[매일춘추] 옥돌봉의 철쭉, 550년 훌쩍 넘다

입력 2015-03-30 05:00:00

▲권 영 시
▲권 영 시

옥돌봉엔 550년생 철쭉이 자란다. 봉화군 서벽리와 우구치리 사이에 있는 옥돌봉은 팔공산보다 더 높다. 바위 빛이 '예천까지 빛난다'고 예천봉 또는 예천바위로도 부른다. 봉화 춘양에서 백두대간 도래기재를 넘으면 우구치 마을이다. 이 마을은 골짜기가 소(牛) 입을 닮아 그렇게 부른다. 거기까지 봉화 땅이고, 조제2교(橋)가 영월과의 경계다. 대간에서 춘양 방면으로는 운곡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흐르고, 재 너머 우구치 물은 남한강으로 흐른다. 조선의 임금이 팔도의 물을 모두 한양으로 흐르게 해 우구치를 경북에 속하게 했다.

도래기재에서 옥돌봉을 따랐다. 첩첩산중이자 빽빽한 숲 속에서 자라는 철쭉 한 그루, 그땐 지금과 달리 무척 찾기가 어려웠다. 첫 발치부터 막바지 꽃인가, 힘없이 떨어졌다. 간밤에 비 내린 탓이리라. 하지만 힘든 비탈 강하게 붙든 층층나무, 물박달나무, 황철나무, 물푸레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소나무가 빼곡했고, 하층식생으로 피나물, 우산나물, 원추리, 참나물, 노랑제비꽃, 옥잠화, 삼지구엽초를 비롯한 야생화가 함께 웅성거렸다. 게다가 새들 또한 양념인 양 노래했다. 저 멀리서 보였다가 사라지는 봉우리를 놓고 계속해 걸었다. 첫 소식에 이미 누군가 다녀갔을 것이다. 애써 신경 써가며 촉촉한 능선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길섶으로 새싹들이 슬프게 짓밟혔다. 거기서 흔적을 놓치지 않고 또 걸었다. 어렵게 찾은 곳, 철쭉이 활짝 꽃피워 반겼다. 시선이 충돌하는 순간 경탄의 목소리는 당연지사였다.

백두대간에서 600년을 코앞에 둔 철쭉 한 그루, 이토록 긴 세월을 견뎌 어쩌면 보물이다. 역산하면 조선 문종 때, 아니 세종 때 이미 뿌리를 내렸을 게다. 그렇다면 숙종 7년(1681) 5월 추암 촛대 바위가 부러진 대지진에도 아무 탈 없었고, 일제의 산림수탈과 한국전쟁의 피폐도 비켜 자랐다는 얘기, 감탄할 일이다. 이곳에 언제 또다시 오겠는가. 습관이듯 늙은 철쭉에 잣대를 들이댔고, 자세히 살폈다. 당시 뿌리 둘레가 105㎝, 키는 5m가 넘는 엄청난 크기였다. 거기서 그룹을 이룬 철쭉도 있었다. 뿌리 굵기가 팔뚝 크기만 한 것들이 10여 개씩 모여 한 그루터기처럼 뭉쳐져 자라는 게 100여 포기나 되었다.

철쭉은 진달래와 달리 잎 돋고 꽃피운다. 하지만 이곳 철쭉은 만개 절정에도 전혀 잎을 달지 않았고, 흐드러진 꽃의 색깔도 분홍이 아닌 거의 흰색이어서 아주 특이했다. 철쭉은 진달래과로 개꽃으로도 부른다. 개는 참(眞)이 아니라는 뜻. 진달래도 개꽃도 아닌 산철쭉은 따로 있다. 지리산 바래봉엔 철쭉도 있지만 대부분 산철쭉이다. 550년을 훌쩍 넘은 옥돌봉의 철쭉은 젊음을 과시하는가. 백두대간이 자랑스럽다.

<시인·전 대구시 앞산공원관리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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