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옛 속담이 있다. 지식에 대한 욕구 때문에 책을 읽고 싶어도 구할 형편이 안돼 훔친 사람이라면 용서해줘야 한다는 조상의 너그러운 심성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지인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마침 읽고 싶던 것이어서 슬쩍 가져다 보고 돌려주는 것이라면 모를까, 서점에 있는 책을 훔치는 것은 명백한 절도 행위이다.
시대가 변하고 보니, 이젠 옛사람들처럼 책을 소중히 서재에 쌓아 두는 이들도 없다. 서점이나 도서관에는 책이 넘쳐나지만, 살 돈이 없거나 꼭 읽고 싶어 훔칠 사람도 없는 듯하다. 자꾸만 책을 외면하고 독서를 안 하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된 세상이다. 그렇다면 꽃 도둑은 어떤가. 책 도둑이 그랬듯이 '꽃 도둑도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가. 관공서 부근이나 교량과 도로변 등에 조성한 화단과 화분의 꽃을 뿌리째 훔쳐가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꽃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별 죄의식 없이 한두 송이씩 뽑아가는 게 문제이다. 그러니 관계자들이 꽃 절도 예방을 호소하는 푯말을 설치하는 등 화단 관리에 애를 먹는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가 꽃 한두 송이 훔친 도둑을 분기탱천 타박하고 처벌할 염치나 있는 것일까. 요즘 전'현직 군 간부들의 온갖 비리행태를 보면 30년 전 군 복무를 할 때 사병들이 부르던 탄식조의 노래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령'중령'대령은 짚차 도둑놈, 소위'중위'대위는 권총 도둑놈, 하사'중사'상사는 모포 도둑놈, 불쌍하다 이내 신세 건빵 도둑놈~.'
그렇다면 소장'중장'대장은 무엇을 훔쳤을까. 큰 도둑이 좀도둑을 대갈일성 단죄하는 조직과 사회를 비꼬면서도, 장성급은 건드리지 않은 미덕이 차마 눈물겹다. 하지만 책 도둑도 꽃 도둑도 건빵 도둑도 도둑은 도둑이다.
채만식문학상 수상작인 '나는 꽃 도둑이다'란 장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현장언어로 생동감 있게 그리면서도, 민초들의 비속한 삶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감싸주기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며 상처를 덧내고 있다. 가진 자들의 부도덕성을 욕하면서도 그들을 흉내 내고 있는 모순구조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을 위한 공동체의 자산인 꽃을 자기만을 위해 훔쳐가는 것은 법 이전에 양식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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