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친절한 영진위氏

입력 2015-03-21 05:00:00

1969년 서울생. 서울고등음악원. 대구MBC라디오
1969년 서울생. 서울고등음악원. 대구MBC라디오 '권오성의 귀를 기울이면' 진행

아침 일찍 동대구역에서 기차 타고 서울로 향한다. 지하철 몇 번 갈아타고 제법 걷기도 하면 시네마테크에서 영화 두어 편 정도 볼 수 있다. 해 지고 나면 라이브 클럽 돌아다니며 재즈와 록밴드 무대를 즐긴다. 찜질방에서 숙박을 해결하고 다음날 아침 김밥 한 줄과 라면으로 배를 채운 뒤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온다. 나 나름 '순례'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인 20세기 나의 주말 풍경이다.

지역에서 즐길 만한 문화가 뻔했던 시절,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1990년대 시작된 문화담론은 영화에서 인디 음악까지 이어진다.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열리고 공간도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소비하던 사람들도 점점 분위기에 적응한다. 특히 해외여행을 통해 시네마테크와 라이브 클럽을 경험한 세대가 늘어나면서 온전히 그들의 문화로 자리한다.

도시생태에서 시네마테크와 인디 음악의 정착은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논의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들 문화의 역할은 그 이상이다. 이런 문화는 그들만의 문화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자의식의 획득이다. 한국 대중문화가 온전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지는 몇몇 순간에서, 어찌 보면 가장 자본주의 냄새 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문화는 소비자 중심이어야 한다.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를 문화 정책의 중심에 둘 때 문화는 다양성을 포함한 기본적인 패턴을 가진다. 투자와 지원 또한 마찬가지다. 생산자에 집중된 투자와 지원은 모양새야 그럴듯해 보이지만 도시 문화의 정체성을 가지지는 못한다. 지역 문화가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목소리를 가지기 힘든 데는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경우 문화 지원의 중심이 소비자에게 있다. 프랑스 예술영화 지원 정책은 공간 활용에 방점을 둔다. 용도 폐기된 지역의 극장을 지자체가 인수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바꾼다. 3류 영화나 틀던 극장은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 공간으로 변신하고 이때부터 생산자들의 다양한 논의와 실험이 이어진다. 노력의 성과는 해당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 형태로 자리한다. 폼 나게 돈 쓸 수 있도록 소비자를 배려한 공간을 만들어야 성공한다는 단순한 생각이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탱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디 음악에 대한 지원은 냉정하다. 공모전 상금 정도를 나눠서 지원하는 한국과는 달리 될성부른 음악에 확실한 지원을 한다. 철저한 심사과정은 음악뿐만 아니라 향후 활동 계획과 마케팅까지 꼼꼼하다. 한국처럼 말도 안 되는 기획서를 예술가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공무원과 전문가 집단이 현장에서 판단한다. 그렇게 지원되는 음악이 성공을 거둘 경우 지원금은 회수된다. 수익금을 나누기도 한다. 다음 지원자를 위해서다. 물론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지원금 회수는 없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 역시 소비자를 중심에 둔다. 소비자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우선 고려한다.

얼마 전 지역 애호가가 나서 극장을 재개관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 대구 유일의 예술영화 전용관인 동성아트홀 폐관을 접하는 심정은 착잡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중단 논리는 실적 저조다. 10년을 넘게 지원했지만 나아지는 게 없다는 거다. 대구시도 막상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모양새가 이랬으니 영진위가 지역을 바라보는 자본 논리에 불쾌감을 떨칠 수 없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가 했던 대사도 자꾸 생각나고.

이참에 우리끼리 뭔가 해 버릴까. 대구시와 영화인 그리고 시민이 머리 맞대면 앞으로 운영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구두장이와 대장장이가 배를 만들고 성을 쌓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는 말길. 자크 랑시에르는 그런 모습을 '악'(惡)이라고까지 했으니까.

권오성/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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