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한국인-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구본진 지음/김영사 펴냄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이사지왕 고리자루 큰칼'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삐뚤삐뚤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아름답고 예술적인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들어낸 신라인들이 왕의 보검에 악필(?)을 새긴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네오테니'(neoteny'자유분방하고 활력이 넘치며 장난기가 가득한 기질)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한다. 지금 한국인들은 오랜 중국화의 산물로 격식과 체면과 겉치레에 묶여 살고 있다. 하지만 이사지왕 고리자루 큰칼에 글씨를 새겼던 5세기쯤 삼국시대의 한민족은 퍽 네오테닉했고, 그래서 글씨에 '신령스러운 자연미'를 불어넣을 줄 알았다는 얘기다. 손이 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써 내려간 듯한 '포항 중성리 신라비'도, 글씨체 모양이 제각각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비슷한 맥락의 유물이다.
고려시대로 오면서 한민족의 네오테니는 중국의 영향으로 경직되기 시작한다. 고려 건국 초기 지배층 사이에서 유행한 구양순체(중국 당나라 서예가 구양순의 서체)는 자획과 결구가 엄격했다. 하지만 청자나 와당에 피지배층이 새긴 글씨체는 여전히 둥글둥글하면서 들쑥날쑥했다.
저자는 조선 세종 때 창제된 한글에 다시 한민족의 정서가 녹아들었다고 주장한다. 한자 글씨체가 규칙적이고 가지런했던 반면, 한글 글씨체는 크기나 간격에 파격이 많이 가미됐다는 것이다. 왕실에서 주고받은 편지에서조차 자유분방한 한글 글씨체를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이다.
저자는 필적학자 겸 글씨수집가다. 그런데 원래 직업은 검사다. 검찰청 조사실에서 21년 동안 일하며 수많은 피의자의 자필진술서를 접했고, '글씨가 곧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저서로 '필적은 말한다: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이 있다. 433쪽, 1만8천원.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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