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의료 등 사회 인프라, 디지털 기술로 통합 그리 멀지 않아요
"판사는 수십 명의 생사를 좌우하고, 의사는 수백 명의 생명을 좌우하고, 엔지니어는 수억 명의 삶을 좌우한다는데 한국이 국민소득 '2만달러의 덫'을 걷어내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일은 결국 이공계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슬산 자락 아래 자리 잡은 대구테크노폴리스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젊은 과학자들의 요람이다. 이 '비슬밸리'에서 한국정보통신기술(ICT) 연구에 분주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손상혁 정보통신융합공학 교수는 우리나라 이공계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손 교수의 연구실에서 우리나라 미래기술 방향과 대구경북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비전을 들어봤다.
◆서울대 전자공학과-카이스트-메릴랜드대
전국의 이공계 영재들이 다 모였다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손 교수는 1970년대 초에 입학했다. 당시 전자공학과는 물리학과와 함께 전국 수재들의 집결지였다. 1970년대 서울대 자연계열 학과 중 전자공학과는 단연 수위 그룹이었다. 당연히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1960년대 IC집적회로 시대가 열리면서 전자공학 분야의 인기는 상한가였죠. 졸업생들은 대기업이나 연구소, 대학에서 입도선매될 정도로 선호도가 높았고, 학생들도 스스로를 전자강국 한국의 미래 주역들이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졌었지요."
서울대를 졸업한 손 교수는 1976년 다시 카이스트에 진학했다. 전기 및 전자분야에서 연구하다 한때 컴퓨터 사이언스 쪽에 빠져 1년간 '외도'를 하기도 했다. 이때의 1년이 나중에 손 교수가 정보통신융합 분야에서 연구할 때 든든한 지식기반이 되었다.
당시 학생들의 향학열은 외국 유학으로 연결됐다. 카이스트나 서울대에도 우수한 커리큘럼이 있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특정분야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나갔다. 손 교수도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 메릴랜드 대학으로 방향을 잡았다. '컴퓨터 시스템' 분야에 올인하고 싶어서였다. 이 학교엔 컴퓨터 전문가, 석학들이 많이 있어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손 교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시스템의 데이터 처리와 관련한 '분산 시스템에서 신뢰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이라는 논문을 완성하게 된다. 손 교수는 이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당시 박사과정으로는 드물게 미국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분산 시스템 분야가 1980년대 미국에서 뜨는 분야였고 특히 '신뢰도 제고'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이 인정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손 교수는 미국과 유럽 학계에서 수많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스웨덴 등 유럽지역 연구자들과도 교분을 넓혔다. 이 학연은 지금도 세계학회에서 공동연구나 초빙연구, 세미나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까운 미래 CPS 현실화할 것
"결국은 ICT 융합기술에서 세계는 또 한 번 'IT 대전'이 벌어질 겁니다. 경쟁에서 이기면 미래 먹을거리가 보장되고, 도태되면 선진국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나노기술 등이 오늘날 미래 신기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손 교수는 이중 CPS(Cyber-Physical Systems'사이버물리시스템) 분야에 몰두하고 있다. 사이버물리시스템이란 디지털 기술과 현실 세계의 시스템을 연결하는 기술로 공상과학 영화, 소설에서나 보던 일들을 현실화해주는 기술이다.
모든 디바이스나 시스템, 인체에 센서를 넣고 이 센서들이 서로 데이터 교신을 하며, 여기서 도출된 자료로 생활의 편리와 이익을 도모하는 기술인 것이다. DGIST는 현재 CPS글로벌연구센터를 설립해 국내외의 다양한 공동연구와 학술행사를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16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자율복원 고신뢰 CPS 연구를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광주과기원 등 국내 우수 연구진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손 교수는 가까운 미래의 대부분 사회 인프라는 CPS로 구현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무인자동차, 의료, 나노바이오, 로봇, IT, BT, 핵기술 등 모든 분야에 이 기술이 응용돼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다.
"한국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기반이 구축돼 있어요. 그 위에 CPS, IoT 기술이 얹히면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규모의 경제가 펼쳐질 겁니다."
◆기술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다
193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 출신들은 약 4만 개의 회사를 설립하고 54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들의 연매출만 2조7천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두 배가 넘는다.
이렇듯 잘 키운 연구소, 대학, 연구단지가 지역 경제를 살리고 국부(國富)를 키우기도 한다. DGIST는 교과과정에 기업가 정신 교육을 포함시켜 학생들의 창업을 장려하고 있다.
DGIST는 2012년부터 기술출자 연구소, 기업을 9곳이나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중 그린모빌리티는 전기 이륜, 삼륜차 시제품 제작을 완료했고, 일부 핵심부품을 대기업에 판매하고 있다. 이 밖에 열전배폐열 회수 모듈, 나노융합섬유마스크팩도 하반기부터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손 교수도 CPS를 산업현장에 접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CPS글로벌센터는 미국 버지니아대와 공동으로 치매환자의 공격 행동양식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는 '킨텐스 시스템'(Kintense System)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앞으로 고령화 시대 치매환자 케어산업에 유용하게 응용될 것으로 보인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2020년도 세계 ICT 시장이 약 1천100조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사물인터넷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하면 그 규모는 가늠조차 힘들다. 2020년대 IoT 시장 규모를 19조달러(한화로 2경)로 추측한 기관도 있다.
인텔, 구글, 볼보,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사 등은 지금 무인자동차, 웨어러블 컴퓨터, 커넥티드 카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이제 생산량이 국가의 부를 결정하는 시대에서 지적재산권과 혁신이 미래의 부를 결정하는 시대가 왔고, 그 총성이 울린 거죠. 이제 곧 '스마트전쟁'이 현실화될 텐데 국가의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대로 몰려서 우리나라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희망찬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손상혁 교수 걸어온 길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1976)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 석사(1978)
메릴랜드대학교 전산학 박사(1986)
KAIST 방문교수(1994)
프랑스 릴르대(2001), 스웨덴 링코핀대 초빙교수(2002)
서강대 WCU(세계적 수준 연구중심대학)사업단 석좌교수(2008~2011)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펠로우(2012)
CPS글로벌센터장(2012)
삼성미래기술육성센터 ICT 창의과제 심사위원장(2013~2015)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펠로우(2013)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2015)
한국공학한림원 외국회원(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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