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참여마당] 수필-동백꽃

입력 2015-03-19 05:00:00

#동백꽃

봄이면 남쪽에서 꽃들이 달려온다. 일렬종대로 서서 줄줄이 몰려온다. 동백, 매화, 산수유… 꽃에는 어떤 성능 좋은 온도계가 있어서 봄이 오는 느낌을 아는 것일까.

누구는 꽃이 열매의 투정이라고 했지만, 아니다. 꽃은 인간들에게 주시는 조물주님 선물이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세상살이에 힘을 내라는 응원이 아닐지.

동백나무는 늘 푸른 나무이다. 상록수가 가을에 옷을 벗지 않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다. 푸름으로 굳게 지조를 지킴이다. 이해(利害)를 찾아 조석으로 바뀌는 인간들에게 주는 모범이며 충고이다.

동백의 잎은 두껍다. 추운 겨울을 나고자 옷을 두툼하게 입은 것이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가 갑옷을 입듯이.

동백나무는 잎이 상록성를 띠기 때문에 겨울에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동백나무는 키가 작다. 기껏 자라야 8m가 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키 큰 나무들이 잎을 피지 않는 시기에 생식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이득일 것이다. 그런데 꽃가루는 누가 전파하나. 중매쟁이 벌이나 나비는 겨울잠을 자고 있는데. 이 겨울에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동물이라곤 새밖에 없으며 동백나무의 수분은 동박새가 한다.

가끔 동백꽃 사이로 동박새들이 보인다. 참새 크기만이나 할까? 머리와 등, 날개는 황록색이며 옆구리는 갈색이고 배는 흰색인데 눈 주위의 희고 동그란 띠가 인상적이다. 곤충을 먹이로 하지만 동백꽃의 꿀을 좋아한다. 그러니 동박새와 동백꽃은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인가. 우리나라의 여수 오동도, 거문도, 울릉도 등 주로 남쪽에서 서식한다. 조그만 녀석이 부지런히 꽃가지 사이로 포르르 거리며 꽃술의 꿀을 빨아먹는다. 동백꽃의 노란색 꽃밥 속에 들어 있는 꿀을 먹는 대신에 수정을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동백꽃을 조매화(鳥媒花)라 한다.

동백꽃만큼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나무도 드물 것이다. 혹자는 차가운 겨울에도 꿋꿋이 살아나가기에 청렴하고 정조가 굳음을 말하기도 하고 굳은 이상을 지닌 자존심 강한 꽃이라고도 말하는 이도 있다. 인생무상을 나타내기도 하여서 사찰 주변에 많이 심는다.

그러나 춘사(椿事)라 하여 예상하지 못한 불행한 일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 병문안을 갈 때 갖고 가지 않는다. 그러니 동전의 양면처럼 동백은 길과 흉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산초당 올라가는 오솔길은 호젓했다. 왕래하는 사람도 뜸했다. 소나무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중턱에 돌로 된 동자석 두 기가 서 있다. 순하게 생긴 동그란 눈과 통통한 손가락이 앙증맞다. 좀 더 올라가자 길가에는 동백꽃이 한창이었는데 성질 급한 치는 벌써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꽃들은 이파리가 하나하나 날리는데 반해서 동백꽃은 그냥 통째로 목이 뚝 잘려서 떨어진다. 처절하다고 할까. 쿨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어떤 시인은 동백꽃의 낙화를 보고 '대가리째 뚝 뚝 떨어진다'고 했는가.

아담한 기와집, 워낙은 초가지붕이었으나 새로 지으며 기와를 올렸단다. 다산초당 마당에 선다. 현판에 '다산초당'(茶山草堂)이라고 쓰여 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 한 것이란다. 초당 앞마당에는 작은 연못에 얼음이 녹고 수련 몇 송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丁石'이란 글자가 조그마한 비석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몸소 새겼다는 후문이다. 차를 끓였다는 다조도 보인다.

10년이나 여기서 머물며 다산 선생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셨다니 책 한 권 제대로 못 낸 스스로를 돌아보며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곳에 살면서 선생은 수령들의 침탈을 모조리 보셨으리라. 그래서 가혹한 정치가 범보다 무섭다(苛政猛虎)고 하셨으리라.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및 중부 이남의 바닷가에서만 볼 수 있는데 바닷가를 따라 서해안 어청도까지, 동쪽으로는 울릉도까지 올라와 자란다. 동백의 북방 한계선은 서해안 대청도이다. 거의 바닷가에서 자란다. 여수 오동도나 부산 오륙도의 동백꽃은 노랫말에 나올 만큼 유명하고 선운사의 동백도 그 명성이 자못 높다. 동백꽃은 못보고 선술집에서 육자배기만 듣는 기분은 어떨까.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세한삼우'라 일컫듯이 다른 꽃나무들이 모두 겨울잠을 자는 동안 동백은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다고 '세한지우'(歲寒之友)라고 부른다.

엄마는 머리를 빗을 때면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랐다. 쪽지고 윤기나는 머릿결은 영락없이 이슬 머금은 동백 잎이었다.

올해도 입춘 전부터 동백꽃이 피리라. 서울에는 동백꽃을 보려면 수목원이나 꽃집에 가야 한다. 그러나 어디 갇힌 꽃이 꽃이랴.

사람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지만, 꽃은 해마다 다시 핀다. 남들 모두 잠든 겨울에 피는 동백꽃. 가녀린 꽃대, 연약한 꽃잎이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기쁨과 위로를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하다. 다산의 '동백' 시를 읽어본다.

옷이야 남녘이라 겨울에도 덜 입지만/ 술이야 근심 많아 밤마다 더욱 마시네/ 한 가지 유배객의 시름을 덜어주는 것은

섣달 전에 붉게 핀 동백꽃이라네/ 봄밤에 꽃 진다 눈물보다 무겁게/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장 마시고 싶은 봄 밤이다

김여하(서울 양천구 중앙로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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