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가정 여성] 음주 폭력에 외도까지 참아야 하나요?

입력 2015-03-19 05:00:00

◇고민=40대 초반 재혼녀입니다. 남편은 술과 외도로 가정을 등한시합니다.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다혈질 성격이 폭발합니다. 뼈가 부러지는 일이 생길 정도로 과격하게 싸우면서 10여 년을 참고 살아왔습니다. 전 남편과도 외도와 도박 때문에 이혼을 했습니다.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혼자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남편이 '너 없이는 못 살겠다' '내 죽는 꼴 볼래'라며 애걸복걸하는 통에 또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두 아들까지 두었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술을 많이 좋아하긴 했으나 가끔 기분파이기도 하고, 장사를 하며 열심히 돈을 벌기에 이 정도면 의지하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어릴 때 어머니가 가출했고,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형수 밑에서 눈치를 보며 어렵게 살아온 걸 알기 때문에 측은지심까지 생겼습니다. 저 역시 동병상련입니다. 네 살 때, 어머니가 자살한 후 계모 밑에서 많이 맞고 이복형제들과 함께 모진 고생을 하며 자랐습니다.

모진 환경에서 자란 우리 부부는 잘 살아야 하는데, 또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만취가 되어 집에 들어오고, 외간 여자를 사귀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어서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혼하자고 하면 돈에 너무나 인색한 남편이 '지난번 이혼에서 못 챙긴 돈, 애들 미끼로 나한테 챙기려 하나'며 억울한 말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비참하게 만듭니다. 아이들도 한창 자라고 있고,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데 과도한 음주에 폭력까지 일삼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부부 모두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못 받고 자랐는데, 우리 아이들마저 이런 불행을 대물림해야 합니까?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참고 사는 것이 엄마의 도리인가요?

◇해법=음주 폭력에 외도까지 서슴지 않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귀하의 마음이 안타까움을 넘어서 화가 나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결핍된 부모사랑을 내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느껴집니다.

남편 또한 일찌감치 부모가 가출하고 사망하는 등 크나큰 상처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자신이 만든 가정은 어떻게든 잘 유지해 보려고 노력은 했겠지요. 그러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할 줄도 안다'고 하듯이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생존을 위하여 하루하루 버티어 온 귀하의 남편은 심리적으로 매우 황폐할 따름입니다. 남편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현실 속에서 자기 나름 열심히 일하지만 돈벌이가 호락호락하지 않고, 어려움에 부딪히면 인내심이 없어 술로 달래는 것 같습니다. 또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게 되고, 가장 가까운 배우자에게 폭력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귀하는 사랑스러운 두 아들의 아버지 자리를 지키게 하려고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살고 있습니다. 계모 아래 매 맞고 자란 과거를 생각하면 아이들이 눈에 밟혀 이혼이란 감히 생각지도 않았다는 귀하에게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외도는 당신이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상담실을 찾아온 귀하의 용기에 먼저 큰 박수를 보냅니다.

'호랑이 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습니다. 음주, 폭력, 외도, 산 넘어 산이지만 하나씩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결단을 내리자는 뜻입니다. 첫째, 지금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엄마로서의 역할수행을 위해 위기를 극복하며, 결코 자신을 비관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용기있는 모습을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이혼 혹은 결혼유지) 내가 가진 자원(경제적 능력, 긍정적인 성격 등)이 어떤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탐색하여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결혼유지를 원한다면 반드시 귀하의 남편을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합니다. 음주문제 해결과 외도 심리를 철저하게 탐색하여 진정한 자기를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셋째, 장기간의 교육과 상담이 필요합니다. 즉 내면탐색으로 자신과 배우자에 대한 깊은 이해, 새로운 부부관계 정립, 부모교육, 대화기술 등을 습득하여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해야만 원만한 가정유지가 가능합니다.

음주와 폭력, 그리고 외도로 얽힌 부부 관계가 다시 원만한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를 바라는 것만큼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본 사례의 경우, 부부 모두 어린 시절 부모의 부존재로 인한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인하여 삶의 질을 좌우하는 안정된 애착 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현실대처를 하며 살아 정서적으로 매우 피폐해진 자신을 결혼을 통하여 배우자로부터 충족하려고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수용과 사랑을 배우자에게 기대한다.

본 사례는 남편의 음주 폭력에 외도문제가 겹쳐 더욱 곤혹스럽다. 어린 시절 '불안애착'으로 인한 관계중독에 해당하는 남편은 자신의 행동이 배우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반면 배우자는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지만 외도만은…'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필자는 처음에 외도한 배우자를 이해하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라고 한다. 지금 겪고 있는 자신의 고통을 자신의 행복을 찾는 터닝 포인트로 활용하도록 하자. 그리고 여기에서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고 결과를 예측하도록 한다. 외도가 드물게는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아직 우리 사회는 남편의 외도에도 자식 사랑하는 아내들이 남편과 재혼여행(?)을 한 번쯤 다녀온 후 용서하는 경우를 자주 보기 때문이다.

박경규 (사)영남가정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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