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인이 내게 물었다. "유럽에서 사니까 뭐가 제일 좋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집만 나서면 유럽여행이다."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지인은 "어느 나라가 제일 좋더냐?" 그런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오스트리아'라고 말했다. 편애할 만한 발언이지만 실제 그런 걸 어떡하느냐.
2006년 해외여행이라고는 처음 간 곳이 런던, 파리, 로마를 둘러보는 서유럽이었다. 나는 직업이 직업인 만큼 유럽의 서양사와 서양미술사를 체험할 아이들과 함께 서유럽 투어를 시작했다. 그렇게 서유럽에 서너 번 다녀오자 동유럽이 궁금해졌다. 서유럽은 왠지 나와는 정서가 맞지 않았다. 솔직히 미술보다는 음악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동유럽에 꼭 가야겠다고 맘을 먹고, 헝가리(훈족의 나라)와 오스트리아(독일어로는 '외스터라이히', 동쪽 지역이란 뜻) 두 나라를 점찍었다. 그렇게 기회를 엿보던 중 2008년 6월 혼자 동유럽 여행길을 나섰다.
먼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부다페스트를 구경하고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오스트리아의 최대 휴양지이자 잘츠캄머굿(황제의 소금 영지)의 대표적 관광지인 할슈타트('소금 도시'라는 뜻이다. 고대 켈트족은 소금을 '할'이라 했다), 잘츠부르크(소금 성)를 거쳐 다시 헝가리로 되돌아오는 일주일 여정이었다.
투어 사흘째 되는 날, 오스트리아 빈 시내 구경을 마치고 베토벤이 살았다는 하일리겐슈타트(신성하고 거룩한 도시)라는 곳에 갔다. 일명 '그린칭'이라는 곳으로 베토벤이 귀가 점점 들리지 않자 요양을 위해 빈 시내에서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한 모양이었다.
그린칭은 비엔나에서 가장 높은 해발 484m의 칼렌베르그(민둥산) 아래에 있는 조용한 교외다. 포도밭과 빈 숲이 시작되는 전원마을이다. 베토벤이 40대에 유서를 썼다는 '유서의 집', 영웅교향곡을 쓴 '에로이카' 집도 있고 베토벤강(Beethovengang)이라는 베토벤 산책길도 있다. 베토벤 산책길은 베토벤이 전원교향곡의 악상을 떠올리던 곳이다. 200여 년 전 베토벤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러면서 문득 밀려오는 생각 하나.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무성한 숲과 개울물, 포도밭, 야트막한 칼렌베르그 언덕의 정감 어린 모습에 그만 이성을 잃어버렸다.
흩날리는 눈을 모아 자꾸만 굴리면 결국 눈사람이 되듯이 막연한 생각들을 이리저리 모아 1년간의 준비 끝에 2009년 11월 가족들을 남겨둔 채 홀연히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났다. "자리 잡아서 부를게"라는 얼토당토않는 말을 하고 떠났을 때의 나이는 49세이었다. 그린칭의 산책길에서 베토벤은 위대한 전원교향곡을 만들고 나는 베토벤을 따라 이민을 생각했다.
군위체험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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