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봉만대, 국내 유일 메이저 에로 감독

입력 2015-03-17 05:00:00

에로 비디오 연출자 드러내고 싶은 과거 "제대로 보여주겠다"

국내 유일한 메이저 에로영화 감독. '에로 거장'이란 수식어로 불리는 봉만대(45)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에로영화 전문'이란 타이틀을 본인 스스로 강조하는 이도 없을뿐더러 에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감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갈 수도 없는 게 국내 영화계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봉만대 감독은 다르다. 에로 비디오를 찍다 충무로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며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비디오와 필름, 드라마 시장까지 발을 넓힌 데 이어 온라인까지 섭렵하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패러디물 '떡국열차'를 연출해 웹 드라마 형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연출뿐 아니라 영화 소개프로그램과 토크쇼 등 교양과 예능의 영역을 오가며 방송인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기도 하다.

◆'떡국열차' 봉만대 연출영역 확장

'떡국열차'는 '웃자고 꺼냈던 이야기'에서 비롯된 기획이다. 2013년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던 봉만대 감독이 웃음을 주기 위해 너스레를 떨었던 게 현실화됐다. 오랜 '절친' 김구라를 주연으로 내세웠으며 3월 둘째 주까지 1, 2회가 공개됐다. 온라인 사이트 비퍼니스튜디오(www.befunny.com)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떡국열차'는 '설국열차'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설국열차'의 기본설정을 코믹하고 야하게 바꿔 웃음을 준다. '설국열차'의 주인공 이름 '커티스'를 '커져스'로 바꾸는 식이다. 'SNL 코리아'와 유사한 느낌으로 촘촘하고 기발한 패러디가 눈길을 끈다.

'떡국열차'를 장황하게 소개한 건 이 작품의 완성도를 따지거나 연출력에 대해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에로 거장'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포맷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방송인으로 인지도까지 쌓고 있는 봉만대의 활동영역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말 그대로 '떡국열차'는 영화감독 봉만대가 어떤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에로 비디오에서 충무로의 정극으로, 또 'TV 영화'라고 불릴 만큼 수준급 완성도의 드라마를 내놨던 봉만대 감독이 쉬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을 하나하나 넓혀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봉만대라는 이름 하나로 온라인 상에서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도의 브랜드 파워를 가지게 됐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이 작품으로 봉만대의 연출 영역 역시 한층 더 넓어졌다.

사실 봉만대 감독은 처음부터 하나의 플랫폼을 고집했던 인물이 아니다. 스크린이 아니라면 TV로 움직였고 4년째 집행위원회를 이끌며 '영화 찍기'의 새로운 방식을 알리는 데 힘쓰기도 했다. 내놓는 작품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비디오를 찍던 시절부터 스토리의 개연성을 따지며 자극적인 영상으로 돈 벌기에만 혈안이 됐던 업계에서 '튀는 존재'로 지목됐다. 정사 신을 연출할 때도 '행위' 자체에 집중하던 타 감독과 달리 '전위'와 '후위'의 느낌을 살려내는 데 신경을 기울였다. '이야기가 있는 행위' 또는 '말이 되는 행위'가 아니라면 굳이 정사 신을 꺼내놓지 않았다. 1999년부터 3년간 에로비디오 업계에서 활동하며 만들어낸 작품은 12편. 한 달에도 몇 편씩 찍어내며 돈을 벌어들이던 당시 에로비디오 업계의 관행을 떠올려보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의 작품을 내놓은 셈이다. '하기 싫은 이야기'를 돈벌이를 위해 내놓고 싶지 않다던 젊은 시절 봉만대의 고집 때문이었다.

◆봉만대 브랜드, 인지도'신뢰도 상승세 이어져

충무로에 들어온 후에도 봉만대의 행보는 범상치 않았다. 2003년 충무로 진입 후 내놓은 첫 작품은 자신의 수식어에 걸맞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한창 피 끓는 나이였던 30대 초반의 봉만대가 젊은이들의 열정적인 사랑을 다뤘던 영화다. 그 나이 때 누군가는 겪어 봤음직한 연애담을 직설적으로 펼쳐 호평받았다. 이 작품으로 김성수와 김서형이 얼굴을 알렸다. 개봉 전 홍보과정에서 봉만대 감독은 주요 부위를 가린 채 위트 있는 포즈로 직접 누드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쩌면 '숨기고 싶은 과거'였을지도 모를 에로비디오 연출자란 사실을 오히려 전면에 부각시키며 '봉만대가 스크린용 영화로 에로티시즘이 뭔지 보여주겠다'고 알렸다.

그리고는 두 번째 충무로 연출작으로 돌연 호러영화 '신데렐라'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또 한 번 활동영역 확장을 꾀했던 것. 이때 인지도가 없었던 무명의 신세경을 주연으로 발탁했던 사람이 바로 봉만대다. 이 영화 역시 남달랐다. 호러영화를 표방하면서 막상 관객의 눈물을 빼놓는 내용으로 '이 감독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후로 봉만대는 타 작품에 직접 출연해 연기를 하는가 하면 '동상이몽' 'TV방자전' 등 드라마까지 연출했다. 그 사이에 다양한 단편까지 내놓으며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를 그린 적이 있는가 하면, 사회 또는 영상업계의 현실을 반영해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다.

2013년에 발표한 '아티스트 봉만대'는 대담한 시도였다. '에로 전문'이란 수식어를 안고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90% 이상 살려낸 영화. 업계에서 에로티시즘을 바라보는 시선, 그 안에서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독의 생생한 생존기를 담았다. 기본적인 시놉시스 외에는 짜인 대본을 만들지 않고 현장에서 애드리브 위주로 촬영을 진행해 다큐멘터리처럼 리얼한 영상을 담아냈다. 또 봉만대 본인이 직접 출연해 연기와 연출 1인 2역을 소화했다. '야동'처럼 자극적인 화면을 기대한 관객에겐 실망을 줄 수도 있겠지만 영화계의 '속살'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보여줘 호평을 끌어냈다.

이처럼 봉만대는 줄곧 관객의 기대에 반하는 행보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줬다. 신음과 살색 영상이 가득한 화면을 기대한 관객에게 실망을 줄 수도 있지만, '이야기'의 재미와 느낌 좋은 영상으로 또 다른 관객의 기호를 충족시켜 줬다.

봉만대 감독의 사생활 역시 '에로영화 감독'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꺾어버리기에 충분하다.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일'이 아닌 이상 여배우들과 사석에서 술자리를 가지는 일은 흔치 않다. 자주 야한 농담이 튀어나올 것처럼 보이겠지만 오히려 봉만대 감독의 대화는 '진지함'으로 일관된다. 방송에서 재미를 위해 꺼내는 너스레의 수위가 오히려 평상시보다 높은 편이다. 그래서 처음 봉만대 감독과 만나는 이들은 작가적인 사고로 똘똘 뭉친 그의 모습에, 또는 예상보다 착실하고 가정적인 모습에 놀라곤 한다. 그러면서 말재주와 은근한 매력에 사로잡혀 봉만대의 팬이 되어버린다.

필자가 처음 만난 30대의 봉만대 역시 그랬다. 또 40대의 봉만대도 마찬가지였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힘들어할 때가 있었고, 그래서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며 살아야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좋은 작품'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고 사는 이가 봉만대였다.

언젠가 홍대 인근에서 술자리를 빙자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봉만대 감독에게 물었다. "에로 감독이란 타이틀을 버리고 싶었을 때가 있었냐"고. 봉만대가 답했다. "아니요." 그리고 덧붙였다.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까지 만족하는 더 건강하고 완숙한 에로티시즘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이후 대학생들을 위한 특강에 초청해 다시 만남을 가졌을 때 비슷한 질문을 했다. "새 작품도 에로예요?" 봉만대가 답했다. "더 죽여주는 에로가 나올 겁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남겼다. "이상이 현실에 꺾일 순 있지만 이상을 버리고 살면 안 될 것 같아요." 변할 순 있지만 뿌리까지 바뀌어선 안 된다는 말. 봉만대가 그렇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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