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애인<愛人>과 애인<厓人>

입력 2015-03-14 05:00:00

1982년 전북 익산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1982년 전북 익산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1996년, 드라마 과 이 드라마의 주제곡인 Carry&Ron의 IOU(I Owe You)가 전국에 신드롬을 일으킨 적이 있다. 가정을 가진 30, 40대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다룬 작품으로 '아름다운 불륜'을 과감히 그려냈다. 이전에도 불륜을 테마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많았지만 대부분 불행한 결말을 보여주며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래서 불륜은 곧 범죄일 수밖에 없다는 관념을 형성하는데 치중했다.

하지만 은 달랐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묶여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을 잃고 살아가는 그 시대 중년의 남성과 여성도 다시 설레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허용해 주는 듯했다. 드라마는 주인공인 유동근과 황신혜의 만남을 간통이나 불륜이라는 부도덕하고 무시무시한 단어가 아닌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단어로 미화시켰다. 이창순 PD의 깔끔한 영상 처리와 감각적인 연출, 애인 같은 미시족(Missy族'결혼은 했지만 미혼인 듯 보이는 여성) 황신혜와 지적인 이미지의 유동근까지 더해져 감성에 목말라하던 중년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매일 밤 10시 대한민국의 외로운 중년들이 TV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당시 중년의 고독을 삼키던 우리 엄마도 이 드라마 속 주인공에 빙의됐다.

20년 전, 그런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10대의 딸은 어느덧 결혼 8년 차,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불륜 드라마를 보는 것조차도 부도덕하다 생각했던 그 딸은 이제는 엄마가 왜 그 드라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처지(?)가 됐다. 나 역시 가슴 뛰는 사랑을 했고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고 사랑의 결실인 아이까지 낳았다.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할 것 같은 그 감정은 일상과 익숙이라는 현실에 부딪히며 처음의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서글픈 이 상황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결혼제도의 숙명일까? 그래서 때로는 부부의 '의리'와 부모라는 '책임'을 던져버리고 다시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으리라…. 하지만 딱 이 기분, 이 감정은 여기까지만이다.

지난 62년 대한민국은 간통죄라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상상 속의 사랑이 현실로 드러나면 그것은 곧 범죄 행위가 됐다. 찬반 논란으로 25년간 끌어온 간통죄 폐지 문제가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에서 결론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아직 간통죄 폐지를 반대한다는 의견이 49.7%로 찬성인 34%보다 높지만 사회에는 예기치 못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헌재 결정 발표 직후, 피임 기구와 피임약 회사의 주가가 상한선을 쳤고, 발기부전약을 만드는 제약회사와 등산용품 업체까지 덩달아 상승곡선을 그렸다. 숙박업체도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는 후문이다. 정조(貞操)가 미덕이었던 대한민국이 헌재 결정 하나로 갑작스레 '불륜 공화국'이 되는 건 아닌가라는 우려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헌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간통죄 폐지=불륜의 합리화'라는 등식이 절대 아니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폐지의 주된 이유이다. 쉽게 말해 바람을 피우는 것은 사적 선택의 영역일 뿐이고, 그걸 공적인 법으로써 재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 따라서 '사회→가정'으로 판단의 주체를 옮기자는 것이다. 간통을 형법으로 다스리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아닌 것은 절대 아니요, 윤리적 도덕적으론 처벌받아 마땅한 죄임에는 변함이 없다. 사랑을 갈구해 애인(愛人)을 찾다가는 사랑과 가정 모두 잃고 인생의 낭떠러지 앞에 선 애인(厓人)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드라마 속에 그려진 '아름다운 불륜', 스무 살 첫사랑에 대한 설렘에 대한 갈망은 오늘도 고이 접어 나빌레라.

이정미/MBN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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