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전자료 공개 해커에 또 구멍 뚫린 정부

입력 2015-03-14 05:00:00

지난해 말 원전 내부 도면을 다섯 차례에 걸쳐 공개하며 원전가동 중단을 협박했던 해커가 79일 만에 문건을 추가 공개하며 정부를 조롱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관련 자료와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간 통화 내용을 기록한 한글파일 등 25개 문건을 공개했다. 지난 연말 "원전 안전을 이유로 원전 가동 중단"을 협박했었다면 이번에는 돈을 요구한 점이 다르다.

석달 전이나 지금이나 이 해커는 '원전반대 그룹 회장,미.핵.'이라는 똑같은 트위터 계정을 사용했다. 이번 글은 '대한민국 한수원 경고장'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이 해커는 "크리스마스를 무난히 넘긴 것은 국민들의 안전이 소중해서인데요. 우리가 너무 조용히 있었나 보네요"라며 지난 연말 국민을 협박했던 사실을 먼저 상기시켰다. 그리곤 자신의 해킹 능력을 과시하듯 공개한 파일들을 해킹했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도 관계기관들은 별것 아니라는 반응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중동 순방 때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기로 한 중소형 원전인 스마트 원전의 증기 발생기 분석자료가 공개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미 학술대회서 공개한 자료"라며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청와대 역시 박 대통령의 통화 내용이 '이미 언론에 일부 내용이 공개됐던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북한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공개된 문건에 '통째'의 북한식 표현인 '통채'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북한에서 자주 사용되는 '요록'이란 단어를 사용한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해 말 해킹당했을 때 '아닌 보살'(시치미를 떼고 모른척한다는 북한식 용어)이 사용된 사례를 들어 북한 소행으로 추정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여전히 공개된 자료의 출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해킹 당시에도 정부는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만 했을 뿐 구체적인 자료 유출 경로와 출처를 파악하지 못했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자료가 기밀이건 아니건, 해킹 주체가 누구이건 해커가 정부 기관이 관리하는 전산망을 손바닥 뒤집듯 드나드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그렇다면 심각한 안보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국민에게 동요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하지만 정작 국민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한 정부가 더 불안하다. 정부는 철저한 수사로 해커의 진원지를 속시원히 밝혀내 국민 불안부터 해소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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