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는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많은 편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적은 편도 아니다. 시와 소설을 쓴다는 점 외에 이들이 특별히 남들과 다른 점을 찾기는 어렵다. 다른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아니라면 그들이 누구인지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이들의 모습은 설사 표면적일지라도 쉽게 티가 나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특별히 보여줄 그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주제로 한 좋은 영화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 면면들을 살펴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하기를 즐기는 작가들도 꽤 있는데, 이들이 정작 시를 쓰는지 소설을 쓰는지 아니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다.
이처럼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이지만 서로 간에는 시와 소설이라는 명확한 경계가 그어져 있다. 이 경계에 대해서는 대부분 고무줄놀이하듯 가볍게 대화가 오가는 편이다. 그러나 사뭇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다. 각자 장르에 대한 애착이 강한 탓이다. 서로 고성이 오갈 만큼 과열되기도 하는데 또 그만큼 해프닝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 친구가 쓴 소설을 보고 시를 쓰는 친구가 "내가 발로 써도 이거보다는 잘 쓰겠다"며 악평을 한다. 그러자 소설을 쓴 친구가 격분한다. "그럼 발로 한번 써보라"며 엄포를 놓는다. 이에 악평의 주인공은 이상한 자존심을 발휘한다. "까짓것 뭐가 어렵냐"며 곧장 발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한참을 끙끙대던 끝에 한 문장을 완성한 그는 결국 발에 쥐가 나고 만다. 그러고는 아픈 발을 주무르면서 이렇게 사과한다. "그래, 소설 쓰는 게 보통 일은 아니구나."
이들은 서로의 성향을 쉽게 구분 짓기도 한다. 예컨대 소설가는 시인보다 말을 잘한다, 시인은 소설가보다 상상력이 풍부하다, 소설가는 남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는다, 시인은 찰나의 순간들을 잘 포착한다는 식으로 서로의 특징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에 그칠 때가 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굳이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언변이 뛰어나거나 상상력이 남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 흥미로운 구석은 있다. 요즘처럼 장르 간 결합이 자유로운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장르를 넘나드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고전적인 두 장르를 경계로 서로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어쩐지 인상적이다. 시와 소설이 이들에게는 명확한 경계지만 정작 사람들 눈에는 이들이 문학을 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잘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더러는 이런 모습이 '웃프게' 비치기도 하는데 그 또한 다분히 문학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승욱 월간 대구문화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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