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야 될 돈이 꼭꼭 숨었다…체감경기는 아직 '겨울'

입력 2015-03-10 05:00:00

1월 주택거래량 작년보다 34%↑…2006년 집계 이후 최대치 기록

정부는 경제지표들이 상승세를 보인다고 밝히지만 실물경제나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크게 좋아지지 않는 모습이다.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인데, 기업과 가계가 벌어들인 돈을 쓰지 않고, 돈을 회전하기 위한 기관들도 보신주의에 빠져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경제 지표는 좋다는데

청와대와 정부에 따르면 최근 주택시장 회복세가 완연하고 고용 호조세도 이어지고 있어 경기회복의 긍정적 조짐이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우선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최근 밝힌 부동산, 고용, 수출, 소비지표 등과 관련한 발언에 따르면, 올 1월 대부분의 주택지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양호한 수치를 기록해 경제 전반에 청신호가 예상된다. 주택 거래량은 전년 동월 대비 34% 증가했고, 1월 기준으로는 2006년 거래량 집계 시작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분양은 8% 감소해 2003년 11월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매매가는 0.14% 상승해 완만한 회복세를 지속했다.

비슷한 시기에 정부는 고용의 경우 1월 취업자수가 3개월 연속 증가해 고용 호조세가 지속됐다고 공개했다. 제조업'보건복지'건설업 등 주요 업종들은 높은 고용 증가세를 지속했고 청'장년층, 여성 등의 경제활동 참가가 확대되는 등 노동공급 여건도 양호한 편이라고 고용노동부는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월 수출은 0.4% 감소해 약보합세를 보였으나 유가 영향이 큰 석유화학 제품을 제외하면 6.6% 증가해 견조한 흐름이 지속돼 소비자심리지수(CSI)는 2개월 연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지난해 우리나라 창업환경 순위가 17위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신설 법인수도 최초로 8만 개를 돌파하는 등 창업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지난해 벤처펀드 조성이 전년과 비교해 61.8% 늘었고, 신규 투자는 18.4% 증가해 2000년 벤처붐 이후 최고치를 달성한 것으로도 집계됐다.

◆유동성 함정 빠진 한국경제

실물경기를 반영하는 주요 지표가 바로 돈의 흐름이다. 돈이 돌지 않을 경우 실물 경기가 위축되고 경제 활성화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경제 공식 가운데 '낙수 효과'라는 것도 돈의 회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최근 국내 현황을 살펴보면 개인들은 돈을 벌어도 쓰지 않고, 기업들도 거대 이익을 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있다. 경제가 돌아가는데 윤활유 역할을 하는 돈이 돌지 않으면서 우리 경제 곳곳에 파열음이 일고 있는 것이다.

돈의 흐름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인 통화승수의 경우 지난해 12월 말 19배를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에 근접했다. 통화승수는 지난해 8월 18.9배 이후 지난해 11월에는 19.5배까지 회복됐다가 연말에 다시 급락했다. 2008년에는 27배에 달한 적도 있지만 2010년 이후 계속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개인이 돈을 받아 이를 은행에 예금하면 은행은 이 돈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준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사람은 이를 다시 다른 은행에 예금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통화량은 계속 늘어나게 된다. 통화승수가 높다는 것은 이처럼 돈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회전되는가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통화승수가 하락하면 정부가 돈을 풀어도 금융기관 안에서 돌지 않아 통화량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줄어든다.

통화승수가 금융기관에서 돈이 도는 속도를 의미한다면 통화유통속도는 돈이 실물경제를 얼마나 부추길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지표 역시 지난해 3분기에 0.73을 기록해 지난 2분기(0.74)보다 낮아졌다. 지난 2분기에 이어 역대 최저치를 경신한 것이 것이다. 통화유통속도란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통화가 평균적으로 몇 번 사용됐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가계'기업'금융권 모두 꽁꽁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시중에 더 많은 자금이 풀렸지만 시중 자금이 금융사 언저리에서만 머물다가 다시 한은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가계'기업'금융사 등 경제주체들이 각자 이유에 따라 몸을 사리게 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가계는 전세금 상승, 고령화와 노후 대비, 가계부채 등으로 인해 소비를 줄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은 2010년 77.3%에서 지난해에는 72.9%로 떨어졌다.

시중에서 돌고 도는 대신 장롱 속으로 숨어버린 5만원권도 통화 유통속도를 떨어뜨린 원인이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12년 61.8%에서 지난해 25.5%까지 떨어졌다. 시중은행 예금 이자가 낮다 보니 장롱에 돈을 넣어놔도 별 손해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는데다 고액권이 세금 회피의 유용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현금을 지속적으로 쌓아두고 있다. 한은의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2013년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잉여금 가운데 다음해로 이월한 자금 비중은 76.9%에 달한다. 이 비중은 2011년 60.9%, 2012년 72.3%로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상장사 현금성 자산은 2010년 113조원에서 작년 9월 말 136조원으로 늘었다.

돈의 흐름을 방해하는 이유로 금융사들의 보신주의도 꼽힌다. 시중에 풀린 자금을 흡수한 은행들은 기술금융 대출에 소극적인 대신 주택담보대출 등을 더 선호하고, 보험'연기금도 지나치게 안전성을 강조하면서 채권투자에만 집중해 자금의 원활한 순환이 막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전 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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