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화 칼럼] 내 이럴 줄 알았다

입력 2015-03-09 05:00:00

국회의원 私感 넣어 김영란법 제정

민간 언론 포함 법적 정당성에 의문

그럼에도 환영, 반부패 사회 첩경

내 이럴 줄 알았다. 김영란법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이틀 만에 '위헌 논란'에 휩싸이며 헌법소원을 당했다. 대한변협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먹물도 마르지 않은 김영란법을 헌법재판소에 넘긴 것은 이 법이 지닌 치명적 하자 때문이다. 국민 과반수 이상이 지지하는 김영란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대환영이다. 하지만 법안이 발의된 지 3년 9개월 만에 나온 김영란법의 헝클어진 형평성과 정당성은 짚을 필요가 있다.

축구 심판이 휘슬 하나만 잘못 불어도 국민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은 법을 만들면서 사감(私感)을 가져서도, 법의 취지를 몰라서도, 여론을 의식해서 뭣도 모르고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감정에 따라 법을 만들어 특정 집단을 골탕먹이기로 든다면 이는 '막돼먹은 국회씨'에 다름 아니다.

김영란법은 헌법기관'공직자'공공기관 종사자'공직유관기관 근무자들이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직무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해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모순을 없애, 세월호 사태에서 드러난 각종 일상적 범법 행위를 근절하라는 국민적 명령이 이 법의 원동력이다.

원래 김영란법은 월급을 세금으로 받는 국회, 공직자, 공공기관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했다. 처음 정부안에 민간 언론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의원입법에서 민간 언론까지 무차별 포함됐다. 언론기관 가운데서도 공직자윤리법의 규정을 받는 KBS나 EBS는 당연히 포함대상이다. 이들은 국회에서 정하는 TV 수신료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민간 언론과는 다르다.

김영란법을 다루는 국회 정무소위(2014년 4월 25일) 속기록은 김영란법에 민간 언론까지 전부 포함된 것이 다분히 국회의원들의 언론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개입됐음을 보여준다. "언론은 힘있는 기관 아니냐" "언필칭 제4부라는…" "더 길게 논의할 것 없이 모든 언론 다 집어넣자" 등으로 시작되어 그렇게 결말이 났다.

좋다. 민간 언론인이 공직자 신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이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안 되도록 한 규정에 대해서는 대환영이다. 사이비 언론이 없는 것도 아니다. 깨끗하게 돈 받지 않는 것은 언론인의 기본이다. 그래야 한다. 언론부터 대한민국을 반부패 국가로 만드는 선봉에 서야 한다. 나만 깨끗하면 무서울 게 없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왜 빠지나? 국회의원들은 왜 선출직을 핑계로 포괄적 예외규정을 두어서 부정청탁금지법망을 빠져나가는가? 포괄적 법망을 빠져나가게 된 것은 정당과 시민단체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회가 김영란법을 만들면서 민간 언론은 규정 대상이 아닌데도 포함시키고, 정작 자신들은 구멍 난 법망으로 다 빠져나간 것이다.

또 하나 보통 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6개월, 늦어도 1년이면 시행되는데 김영란법은 1년 6개월 뒤에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을 만든 19대 국회는 스스로 적용대상에서 도망갔다. 이러니 오염된 정치, 수준 이하 국회가 문제라고 하는 것 아닌가.

법은 하늘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관습법이나 불문율과는 달리 국회의원들이 만드는 제정법은 그 적용 대상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하다못해 고기를 잡는 어망(漁網)도 그물코가 몇㎝ 이하여야 한다고 정해놓는데, 사람이 지켜야 할 법망(法網)의 적용 대상은 정당해야 하고, 형평성을 무너뜨려서는 존립의 가치가 없다.

법으로 국가를 바로 세우겠다는 소명감은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지켜야 할 마지막 금줄이다. 전 국민이 사랑하는 김영란법, 제대로 보완해서 오래 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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