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양반 지향성

입력 2015-03-07 05:00:00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경북대 고고인류학과'경북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한 학자는 조선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사회였다고 증언한다. 그에 따르면 조선은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이 절대적 퍼센트로 분포된 사회이기보다는, 모든 구성원들이 상대적 지위로서 양반이냐 상것이냐가 갈리는 소위 '양반 지향의 사회'였다. 다시 말해 조선의 모든 구성원들은 '더 양반이냐' 혹은 '덜 양반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상대적으로는 양반인 동시에 상놈인 사회였다는 것이다.

그가 든 예시는 이런 것이다. 조선시대의 동래 사람들은 거제도 사람들과 혼사를 트지 않았다. 동래 사람들 왈, "아니 동래는 뭍이고 엄연히 양반들이 사는 곳인데, 어찌 저 섬에 사는 상것들과 혼사를 트겠느냐!"이랬다는 것이다. 다음은 더 가관이다. 공연히 상것 취급을 당한 거제도 사람들은 그 울분을 이렇게 풀었다고 한다. "뭐? 비진도 인간하고 혼인을 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 거제도는 뭍에 가까운 양반 섬인데, 어찌 저 먼 비진도의 상놈과…. 에헴!"

이러한 지독한 양반 지향의 사회에서는 누구도 계급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다. 태정태세니 예성연중이니 하는 자들조차 어느 날 중국에서 어떤 놈이 종이 쪼가리 하나 들고 와서 팔랑팔랑 흔들면 졸지에 납작 엎드려서 상놈 행세를 해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차별을 받던 섬사람들이나 함경도 골짜기의 사람들도 왜놈이나 오랑캐놈을 만나면 에헴, 하고 큰소리를 한 번 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국은 대국이니 머리를 조아리고 배워야 할 양반 나라라는 것이고, 왜나 여진은 예와 법도도 모르는 미개한 자들이니 무시해도 좋을 순 상놈 무리들이라는 것.

조선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임진년과 정유년을 거쳐 이 지엄한 양반국은 그 하찮은 상것들의 침입을 받아 농지의 70%를 손상당한다. 정묘년과 병자년을 거쳐서는 드디어 조선 최고의 양반이 그 순 상놈의 우두머리에게 절까지 하는 고초를 당한다. 정작 조선이 패망한 주 원인은 그 이후부터의 오판이다. 만동묘(萬東廟)를 짓고 이미 망한 명나라를 섬긴 지배층의 수구작태가 작은 오판이요, 그 작태를 때려 부수고 자유도시를 건설했어야 할 신흥 세력들이, 족보나 사서 적당히 '더 양반'이나 해 버린 것이 더 큰 오판이다. 공히 결국 그놈의 '양반 지향'이 문제였던 것.

2015년, 우리는 조선의 후예답게 이 찬란한 양반 지향의 전통을 현대사회에 이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대학은 딱 두 개밖에 없다. '더 양반대'와 '덜 양반대'. 그래서 인터넷을 보면 청년들조차 "어디 건동홍의 상것들이 중경외시의 엄연한 양반대와 맞먹으려 하는고!"하는 호통을 내지른다. 딸을 외국인에게 시집보낼 수 있겠느냐는 인터뷰에 응하는 여사들의 태도도 정확하게 양반을 지향한다. "좋죠. 왜 반대해요? 나는 보수적이지 않아요. 외국인과의 결혼 찬성이에요." 그 외국인이 동남아인이라도 같은 대답이냐고 추가 질문을 받은 뒤에는, "허허. 그건 아니죠. 검은 쪽은 절대 사양입니다!" '나보다 하얀' 양반 사위가 갑자기 '나보다 검은' 상놈 사위로 바뀌니 조금의 가식이나 위선도 부릴 비위가 못 되는 것.

이 '양반 지향'이 우리 사회에 준 가장 큰 비극은 건전한 계급 정치가 뿌리내리기 힘들다는 데 있다. 별의별 하찮은 이유로 양반질을 하게 된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은 도외시하고 소수의 '진짜 양반'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쪽에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니 자원외교니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털리는 것은 우리 지갑인데도, "어허험! 우리는 엄연한 양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인데, 어찌 저 상놈들의 편이 되겠느냐!" 이렇게 호통을 치고 있으니. 이 '가짜 양반'들의 눈물겨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우리 모두 경배를!

박지형/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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