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를 물었다는 여도지죄(餘桃之罪)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위(衛)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라는 신하가 있었다. 어느 날 밤, 미자하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을 꾸며 왕의 수레를 훔쳐 타고 나갔다. 위나라에는 왕의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 타면 발을 자르는 법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왕은 지극한 효성이 끔찍한 벌까지 잊게 했다며 미자하를 칭찬했다. 또, 미자하는 왕과 함께 과수원에 가 복숭아를 먹다가 아주 맛있다며 먹다 만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 좋은 맛을 잊고 나를 먹여준다"라며 즐거워했다.
세월이 흘러 왕의 총애가 식었다. 미자하가 사소한 실수를 하자 영공은 "이 자는 거짓을 꾸며 내 수레를 훔쳐 탔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인 일이 있다"며 크게 화를 냈다. 한비자는 왕의 총애 여부에 따라 똑같은 일이 180도로 달라지는 것을 경계하며 예를 들었다.
3일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벌어진 후폭풍에서 이 '먹다 남은 복숭아'의 꼴을 본다. 이 법은 논의 단계에서 위헌 여부나 부작용 문제가 거론됐지만, 대다수 국민은 부정부패를 막자는 원칙에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사실, 그동안 국회든, 언론사든 이러한 국민 지지에 눌려 눈치를 봤다. 특히 언론사는 이 법의 대상에 언론사를 포함하는 것이 껄끄러웠지만, 대놓고 불평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국회를 통과하자, 온갖 부작용을 거론하며 일제히 성토하는 분위기다. 대부분 매체가 대한변호사협회의 헌법소원 신청 예정 뉴스를 비롯한 곳곳의 반대 여론을 중요 기사로 다룬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언론의 처지에서 보면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 없어 '울고 싶던 차'에 적절하게 뺨을 맞은 셈이다.
이 법은 전혀 겁을 낼 필요가 없다. 부정 안 하고, 집안 잘 다스리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뼛속 깊이 새겼을 수신제가(修身齊家)면 만사 OK이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4%가 김영란법 통과를 '잘했다'고 답했다. '잘못했다'는 7.3%였다. 국민 절대다수가 김영란법을 총애한다는 이야기다. 아직 국민의 성원이 뜨겁고, 법 시행까지는 1년 6개월이나 남았다. 김영란법이 '먹다 남은 복숭아 꼴'이 되느냐 마느냐는 국민의 지속적인 총애에 달렸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