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가본나라 이탈리아

입력 2015-03-06 05:00:00

이탈리아에 대해 조금 안다며 잘난 척했고 철이 없던 30대 시절, 서울 명동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메뉴를 보고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스파게티 본거레, 스파게티 가본나라' '본거레'는 '봉골레', '가본나라'는 '까르보나라'를 잘못 표기한 것이었다.

문득 8년 전이 떠오른다. 당시 대구에 와서 요리하며 겪은 슬픔과 좌절감은 심각했다. "대구에 왔으면 대구식으로 하셔야죠. 이게 뭐예요?" 손님들이 거부해 수많은 봉골레와 까르보나라가 버려졌다. 가령 손님들은 크림이 들어간 까르보나라를 원했는데,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까르보나라에 크림을 넣지 않는다. 관치알레(돼지 뽈살을 염장한 것)와 양파 등을 올리브기름에 볶아서 계란 노른자와 뻬코리노(양) 치즈로 맛을 낸다.

사실 파스타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 일본과 주한 미군을 거쳤다. 그 영향으로 여러 가지 재료가 혼합된 '크림 짬뽕'으로 변형된 것이다. 또한 이탈리아식 파스타는 소스의 양도 많지 않으며 소스를 거의 한 가지 재료로 만든다. 한마디로 심플하다.

그러므로 "소스 더 주세요"라거나 "피클 더 주세요"라는 식의 말은 곧 요리사를 모욕하는 것이다. 왜일까. 예컨대 이탈리아 식당에는 피클이 없다. 피클을 시키는 행위는 음식이 맛이 없으니 대신 피클이라도 먹겠다는 의미가 된다. 또 봉골레나 해산물 파스타를 먹으며 "치즈를 안 뿌려준다"고 화를 내거나, 레드 와인을 마시며 먹는 해산물에서 "비린내가 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이탈리아 음식을 처음 먹어봐서 그래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얼마 전 대구 최초의 이탈리아 오너셰프 식당으로 꼽히는 '나폴리'의 요리사 죠르지오가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죠르지오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구에서 제대로 된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변형된 '본거레'와 '가본나라'에 맞서 10년 이상 버티다 견디기 힘들어 자기 나라로 돌아간 것이다.

요리사에게는 고유한 손맛과 나름의 작은 문화가 있다. 대구 사람들은 이제 더는 죠르지오의 손맛과 문화를 느낄 수 없게 됐다.

요리사들은 성격이 나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자기 음식을 알아주면 행복해하고, 음식이 남아 주방으로 되돌아오면 슬퍼하는, 예술가적 단순함을 지닌 이들이 많아서다.

죠르지오도 그랬다. 그는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죠르지오가 기분이 좋으면 그날 그의 식당에서는 최고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손님 네 명이 와서 파스타 두 개를 나눠 먹는 날이면 죠르지오는 어두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그의 파스타도 맛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고장에도 좋은 이탈리아 셰프가 와서 본고장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길 기대하며, 죠르지오를 추억해 본다.

김학진(푸드 칼럼니스트 까를로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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