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법무법인 취업으로 인연…"아내 만나 대구 매력 알게됐죠"
인생은 결코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때론 뜻하지 않게 발생한 일이 삶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4년 전 어쩌다 대구에 둥지를 튼 최우정(37) 변호사의 삶이 그렇다. 제주도에서 20년, 서울에서 15년을 산 최 변호사는 2011년 처음 방문한 대구에서 변호사로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대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향후에는 대구에서 자신의 법무법인을 개업하고 싶어 한다. 지난 16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그의 법률사무소에서 어엿한 '대구 사나이'가 된 최 변호사를 만났다.
◆대구는 내 인생의 변곡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태어난 최 변호사는 늘 생각대로 살아왔다. 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적부터 제주도 너머의 세상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고교 시절 '인(in) 서울'을 목표로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공부했다. 꿈은 클수록 좋았다. 서울대와 고려대 등 일명 'SKY 대학교' 입성을 꿈꾸며 노력했고, 1996년 바라던 서울대학교 입학에 성공했다.
서울에 온 뒤에는 제주도에서 누리지 못했던 다양한 놀이문화를 마음껏 누리고자 했다. 이번에도 최 변호사는 목표를 달성했다. "입학 후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1년 반 동안 정말 열심히 놀았어요. 1학년 때 학점이 0.5도 안 됐었죠. 1.0이 넘으면 잘한 편이었어요.(하! 하!)"
군대에 다녀온 후로는 다시 공부 삼매경에 빠졌다. 당시 주변 선'후배들 사이에 사법시험 열풍이 불었고, 그 역시 법조인이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때부터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지만, 법조인이 되는 일은 예상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법조인이 되리라는 꿈을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6년 동안 공부한 끝에 2006년 사법시험이라는 높은 관문을 통과했다. 이후 위궤양 등으로 몸이 좋지 않아 사법연수원 입학을 잠시 유예했지만, 2011년 사법연수원(40기)을 수료하고 그토록 바라던 '변호사'로서의 자격을 얻게 됐다.
운명의 장난일까. 이후 서울'경기권에서 변호사로 활약할 꿈만 꾸던 그는 그해, 생뚱맞게 대구의 한 법무법인에 취업하게 됐다. 서울의 법무법인인 줄 알고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는데 그곳은 대구에 위치한 법무법인이었다. 면접 보러 오라는 소식을 듣고, 한참을 망설였다. 대구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나 친척 등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지역으로 간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대구로 가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초년생이잖아요. 제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자신했죠. 이제 대구가 저의 새로운 꿈의 터전입니다."
◆반해버린 대구 사람의 뚝심
자신감 하나만 믿고 대구에 왔지만 사투리, 음식 등 대구의 모든 것들이 처음엔 낯설기만 했다. 위궤양을 앓고 있었던 탓에 음식을 싱겁게 먹어야 했지만 식당 음식은 하나같이 짜고 매웠다. 대구 사람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와 큰 목소리는 '상대방이 화가 났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대구 사투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곤란했던 적도 많았다. 특히 학연'지연 등을 중심으로 법조인 모임이 이뤄지고 있었던 터라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그가 지역 법조인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대구에 정을 붙이게 된 건 소개로 만난 지금의 아내 덕분이다.
"아내와 함께 구석구석을 놀러다니면서 대구의 매력을 하나씩 알게 됐어요. 도로망도 바둑판처럼 잘 짜여져 있고, 인근에 놀러 갈 곳도 많아요. 연극, 뮤지컬 등 문화적으로 즐길 것도 다양합니다. 지금은 대구 막창을 가장 좋아해요."
최 변호사는 결혼 이후에 지금의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면서 대구에 아예 정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물론 사무실 개업을 두고 주변 사람들의 만류가 만만치 않았다. 당시 변호사 시장의 장기불황으로 사무실 문을 닫는 변호사가 많았었다. 무엇보다 '지역주의'라는 두터운 벽을 깰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컸다. 하지만 그는 그런 걱정은 주위 사람들의 기우에 불과하다고 자신했다. "아내 소개로 사귄 지인들을 통해 한 번 신뢰를 주면 절대 변하지 않는 대구 사람들의 뚝심을 봤어요. 열심히만 하면 저의 진심이 전달될 거라 생각했죠."
실제 변호사 사무실 개업 초기에는 사건을 맡기길 머뭇거렸던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곤 했다. 결과가 좋지 않았음에도 다시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전한 의뢰인도 있었다. 진행 상황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기며 노력한 결과였다. 여기에 대구 사람들과 다른 자상한 말투와 세심함은 오히려 그에게 승부수가 되었다. "고문변호사가 있음에도 회사와 관련된 사건을 저에게 수십 차례 맡긴 경우도 있었어요. 대구 사람을 믿은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죠."
◆대구는 이제 내 고향
최 변호사의 대구살이는 올해로 5년차다. '대구 새내기'인 그는 앞으로 대구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에 변호사로서 도움이 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달성군, 북구청, 각 지역 사회복지관 등 지역의 여러 기관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법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민들을 돕는 일에도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대구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했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지역 법조인 모임, 지역 주요인사들의 모임에 먼저 찾아가 인사를 나눈다. "이제 저도 대구 사람이잖아요. 지역사회가 더 잘 되기 위해 저도 힘을 보태야죠. 지역민들이 저에게 보여준 신뢰에 보답할 기회가 생기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어요."
지금껏 뜻한 바를 하나씩 잘 이뤄가고 있는 최 변호사의 다음 목표는 대구에 자신의 이름을 대표로 내건 법무법인을 차리는 것이다. 조세'금융 등에 관심이 많은 그는 관련 분야에 특화된 법무법인을 꾸리고 싶어 한다. 아직 변호사로서 경력이 많지 않아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지만, 그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구라면, 또 대구 사람들이 저를 믿어준다면, 저는 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기획취재팀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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