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대부업 몰리는 것은 저축은행·상호금고 무너졌기 때문
'복숭아나 자두나무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로 (향기 때문에) 지름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사마천의 '사기')
국제금융 분야 최고 전문가인 이장영(59) 한국금융연수원장의 모토다.
젊을 때부터 학자나 관료로 국가 경제정책에 기여하고픈 꿈을 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1차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던 1974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한승수'이현재 교수의 경제정책론 강의를 들으며 경제 관료로서의 꿈을 키웠다. 국제금융 분야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시점,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다.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장학금을 한번이라도 놓치면 되돌아와야 할 상황. '죽기 살기로' 아르바이트하고, 공부한 덕분에 박사 과정 34과목 모두 A학점을 받았다. 7, 8년이 걸려도 쉽지 않은 뉴욕대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5년 6개월 만에 따냈다.
그의 탄탄한 실력은 뉴욕주립대 교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통화기금(IMF) 등 실전 경험으로 이어졌다. 박영철 전 경제수석이 금융연구원으로, 임창열 전 부총리가 구제금융 협상자문위원으로, DJ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그를 불렀다. 진념 전 재정경제부'전윤철 전 기획재정부장관이 그를 장관자문관으로 발탁했고, 자리를 옮긴 전 감사원장은 다시 감사원장 경제특보로 기용했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와 부원장을 역임한 외부 인사 1호이기도 하다.
경제통으로서의 진한 향기가 배어나는 이 원장으로부터 국내 금융 상황과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해 들어봤다.
-가계부채가 늘고 있는데, 심각하지 않나.
▶소득수준이 낮은 20%의 가계부채가 전체 부채의 5% 정도인데, 당국이 신경을 써야 한다. 이들은 소득 대비 상환 부담이 20%를 넘기 때문에 감내하기 힘들 수 있다. 이들의 부채가 부도나 은행 신용위험에 미치는 영향 등 금융 시스템의 위기를 가져오지는 않지만, 소비수요가 위축되는 부작용이 있다.
-외국계 대부업체들이 입지를 넓히고 있는데, 서민금융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5년 동안 대부업체 이용 비율이 크게 늘었다. 이는 서민층이 확대된 것도 있지만, 저축은행이나 상호신용금고 같은 서민금융 공급기관이 많이 무너지고 위축된 때문이다. 수요는 늘어났는데, 공급이 줄어드니까 결국 대부업체 쪽으로 몰리는 것이다.
대부업체도 선진국처럼 과학적인 신용위험평가가 필요하다. 은행에서 신용을 얻지 못하는 저신용등급자에 대해 은행계열사와 대부업체가 합작해 한쪽은 보증을 하고, 한쪽은 대출을 하는 연계 시스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혁신기업 육성을 위해 기술금융, 관계형 금융 등 모험자본을 활성화할 방침인데.
▶기술은 있는데 자금이 없는 유망 중소기업을 도와줄 수 있는 정책 어젠다이다. 담보나 보증은 없지만, 기술력과 특허권을 심사해 경제적 가치가 있다면 여기에 입각해 대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다만 우리 은행이 기술금융을 평가할 역량이 조금 부족하기 때문에 이 분야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기술평가 역량 강화 속도에 맞춰 기술금융 실적을 늘려야 한다.
-금융 당국이 '핀테크'(정보통신+금융)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데.
▶송금이나 결제업무 등 1차적 목표에 그치지 않고, 2차적인 부분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은 송금 등 1차적인 핀테크 인프라는 발달해 있다. 여신 의사결정, 대출, 머니론 등 빅데이터 기술도 결합해 응용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공격적인 경기 진작책을 내놓고 있다. 금융권의 대응은.
▶금융이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넘어 자체적으로 인력을 갖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금융업이 한국경제 국내총생산(GDP)에 차지하는 기여도가 6%인데, 그 비중을 10%까지 늘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금융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다.
금융권의 해외진출 활성화를 위해서는 예대 마진(대출 금리에서 예금 금리를 뺀 차이)이 큰 동남아지역 진출을 넓혀야 하고, 은행 역량을 높여 신탁'무역'인수합병(M&A) 수수료 등 투자은행(IB) 업무와 관련된 비(非)이자수익을 확대해야 한다.
-일본,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까지 돈 풀기에 나섰다. 환율전쟁 속에서 우리의 대응은.
▶기업들이 환율변동 위험에 대응하는 테크닉이 부족하다. 헤지(가격변동의 위험을 선물의 가격변동에 의해 상쇄하는 현물거래)를 하지 않고, 투기를 한다. 환율은 워낙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물환거래, 환옵션거래, 환율변동보험 등 헤지를 해야 한다. 순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금액의 75~80%는 무조건 헤지를 해야 한다. 현재 엔화가 많이 약세고 정부도 관세감면 혜택을 준다고 하니, 이때 설비 투자를 해야 한다.
-포화 상태인 우리 금융이 국내를 벗어나 해외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단계별'업종별'지역별로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어떤 나라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업종으로 진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호감도가 높은 동남아를 우선 진출지역으로 삼고, 성공하면 주변국으로 거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업종의 경우 기업금융부터 먼저 진출한 뒤 중기적으로는 강점을 갖고 있는 소매금융 서비스를 고려해볼 만하다. 장기적으로는 IB 업무를 갖고 해외시장을 노크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지점 설치를 통해 자체 성장을 꾀하고, 자리가 잡히면 현지 금융기관 M&A 등으로 확장해야 한다.
김병구 기자 kbg@msnet.co.kr 사진 이성근 작가 lily-3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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