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엔 포르쉐 거지'페라리 거지 많아
꿈의 차 소장하기 위해 '짠돌이' 생활
나의 애차는 독일 B사의 89'92년 모델
한국 자동차 영향력 있는 인물에 뽑혀
'포르쉐 거지'. 일본 젊은이들 중 스포츠카 포르쉐에 광적으로 탐닉하는 가이(guy)들의 별칭이다. 그들은 차를 소유할 수만 있다면 교활한 수단과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학등록금을 미리 내면 30% 할인받을 수 있다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어차피 줄 유산이니 미리 내놓으라고 생떼도 부리고, 가출은 물론 죽어버리겠노라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기는 그 나라도 마찬가지여서 돈을 마련해 주면, 중고지만 바로 꿈의 차를 소장하게 되는 것이다.(그 브랜드의 캐치프레이즈도 멋지다. 우리 차에 중고라는 것은 없다. 새로운 오너만 있을 뿐이다.) 투잡, 스리잡 알바를 뛰어도 차 유지비가 장난이 아니다 보니 의식주행(行) 모든 것에 짠돌이 생활을 해야만 한다. 끼니는 라면으로 때우고 목욕 세탁비도 없다. 숙식은 당연히 차에서 한다. 깡통만 안 들었지 영락없는 거지꼴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애마(愛馬)와 함께라면 황홀한 걸 어쩌랴. 간혹 페라리(Ferrari) 거지도 있다.
일본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기타노 다케시는 괴짜 중의 괴짜로 명성이 높은 만큼 자동차에 대해서도 괴팍하다. 포르쉐를 인수 받는 날 새 차 운전을 친구에게 부탁하고 자신은 택시를 탔다고 한다. 앞차를 따라가 달리면서 기타노는'와 저것이 내 차란 말이지? 오, 믿어지지 않아 야홋…' 웃고 박수치고 생쇼를 하자 택시기사가 "새 차의 첫 운전을 왜 다른 사람이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버럭 화를 내며 "내가 운전하면 저 환상적인 내 차의 모습을 볼 수 없잖소"하고 소리쳤다나.
어떤 분야나 마니아 중에는 또라이가 있다. 또라이도 여러 부류인데 대체로 천진난만하면서 천재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나도 '카 마니아'란 호칭이 있다. 지난해 한 자동차 저널에서 대한민국 자동차에 영향력 있는 11인을 선정했는데 1위는 현대 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이었고, 자동차 비즈니스와 무관한 민간인(?)인 나는 11위였다. 카 마니아 주니어인 막내 녀석은 성우 1위보다 더 자랑스럽다고 야단이다.
남자들은 2C와 2W를 숭배한다든가. Car, Cinema 그리고 Woman과 Watch이다. 어딘지 카사노바 스타일이 느껴진다고? 글쎄다.
나의 애차(愛車)는 독일 B사의 1989년 형과 1992년 모델로 아반떼 크기만 한 올드카다. 차에 관심 없는 분들은 '올드카'라고 하면 '경로당 차냐'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 아니올시다다. 아름답고 품위 있게 나이 든 어르신이 존중받듯이 마니아들에겐 애지중지하는 빈티지 오브제다.
물론 오래된 차다 보니 고장이 나기도 한다. 며칠 전에도 운행 중 덜컥 시동이 꺼졌다. 그럴 때마다 식은땀이 흐른다. 잽싸게 내려 수신호로 뒤차들의 통행을 유도해줘야 한다. 나를 알아보는 운전자 중엔 "맥가이버 자동차도 고장이 납니까"라며 차를 밀어주기도 하고, 레커차를 불러주겠다고도 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여하튼 차가 고장 나면 "에잇 이놈의 O차"라고 하며 타이어를 걷어차거나 문짝을 쾅쾅대는 운전자들도 있는데, 마니아들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차가 아픈 것은 관리 잘못한 나에게 죄가 있는 것이지 자동차는 무죄이기 때문이다. 레커차에 실어 가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많이 아프니? 조금만 참아줘 곧 나을 거야."
증세가 좀 심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다른 나라 카 마니아 이야기도 보태야겠다. 루비콘 트레일(Rubicon Trail)이라는 지프 잼보리(Jeep Jamboree) 행사에 초청받아 미국 네바다주에 갔었다. 2박 3일 프로그램으로 험악한 돌산을 넘어가야 하기에 지프형 차만 참가할 수 있다. 그나마도 험상궂은 특수 타이어를 창작한 차들은 바위 틈새를 기어오르지만 일반 타이어로는 어림없다. 동료들이 바위를 들어내고 새로 고여 주며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줘야만 전진할 수 있다. 희생, 나눔, 봉사의 협동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동인지 체험하는 것도 멋지다. 경사가 심한 구간에선 사고도 일어나 헬리콥터가 연신 하늘을 빙빙거린다.
이런 행사에 언젠가 캐딜락 마니아가 도전했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는 사고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마니아는 무덤 속에서도 고독하거나 무섭지 않았을 것이다. 유언대로 차와 함께했으니. 그리고 자그마한 묘소가 세워진 그 언덕을 캐딜락 힐(Hill)이라고 불러 주니까 말이다. 하늘나라에서도 어른들의 장난감인 자동차와 함께 천국 여행을 즐길 것이다.
이렇게 마니아 세계는 때로 코믹한 동화가 되기도 한다.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