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전력확보 필요" "인간 기술로 통제 불가능"… 찬반 갈라진 열도
도쿄는 예전과 다름 없이 휘황찬란했다. 온갖 광고판과 네온사인이 거리를 뒤덮고 있었고, 도쿄타워의 조명은 저 멀리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다.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모든 원전이 멈춰 서 있지만, 전력 수급은 전혀 문제없어 보였다. 사고 직후 한때 계획 정전도 있었지만, 그 후에는 전력 부족을 전혀 겪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일본은 원전 재가동을 준비 중이다. 4년 전 끔찍한 원전 사고의 기억을 잊어버린 걸까, 아니면 원전이 일본 경제에 아주 절실한 존재인 걸까.
일본 국민들도 정부의 원전정책에 큰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국민들의 원자력 공포,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전 재가동을 준비하는 이유는 뭘까?
◆아베 정권의 원전정책
일본은 한때 원전 수를 기준으로 세계 3위의 원전 국가였다. 전체 전력의 29%(한국은 26%)를 생산하는 막강한 에너지원이었다. 2011년 사고 직후 가동 중이던 54기의 원전은 차례차례 가동을 중단했다. 당시 민주당 정부는 안전성 점검을 위해 원전 가동을 멈췄고, 2030년까지 모든 원전을 없애기 위한 '원전 제로(zero)'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2012년 말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아베 정권은 슬그머니 '원전 제로' 정책을 수정하기 시작, 원전 재가동에 시동을 걸었다.
현재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원자력 규제 및 인허가 기관)의 심의를 통과해 재가동이 결정된 원전은 4기(센다이 1'2호기, 다카하마 3'4호기), 재가동을 신청한 원전은 17기(1곳은 건설 중인 원전)에 달한다. 공사가 중단돼 있던 신규원전 4기의 공사도 재개됐다.
규슈전력의 센다이 원전 1'2호기는 가고시마현의 동의를 통과해 이르면 올해 상반기 중 재가동되고 간사이전력의 다카하마 3'4호기는 현지 주민 동의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1, 2년 후에는 일본 전역에서 20여 기의 원전이 재가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과거와는 달리 계획 중인 원전 건설을 불허하고 건설 중이거나 기존 원전을 재가동하는 선에서 에너지정책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2030년, 이미 폐로가 결정된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 1~6호기와 40년 이상 된 노후원전 30기를 폐로하게 되면 18기의 원전만 남게 된다. 여기에 건설 중인 2곳을 보태면 모두 20기 원전이 가동된다. 2011년 이전과 비교할 때 37%의 원전만 보유하게 되는 셈이어서 오히려 한국보다 더 적어진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올해 중 전체 전력 가운데 원전 의존 비율을 20% 안팎에서 맞추기 위한 검토를 하고 있다.
◆원전 재가동이 필요하다는 이유
다쿠야 하토리(服部拓也'70'사진) 일본원자력산업협회 이사장은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겪고 난 후 일본 원자력업계가 '안전 신화'만 믿고 너무 교만했음을 깨닫고 반성하는 중"이라면서 "그렇다고 (경제상황이나 국민생활 측면에서) 원전 가동을 계속 멈춰 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원전 가동을 멈추고 나니 전기료가 가정 20%, 공장 30%나 올랐다"며 "일본이 원전 대신 화력발전을 위해 매년 3조7천억엔(약 34조원)어치의 석탄'석유, 천연가스를 수입해야 하는데 하루에 100억엔(약 930억원)이 드는 꼴이며 만약 중동에서 불안정한 사태가 일어나면 수입마저 곤란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당장의 전력부족 현상은 없지만 안정적인 전력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면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주민 동의를 얻어 재가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원전 재가동을 위해서는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1년 6개월간에 걸쳐 까다롭고 세밀한 서류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후쿠시마 사태를 겪으면서 원전 기술 자체보다는 원전에 대한 정보 공개, 투명하고 민주적인 주민 동의 절차 등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게 됐다"면서 "한국에서도 신규 원전 건설이나 수명연장 등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조언했다.
◆'원전 제로'가 당연하다는 이유
야마구치 유키오(山口幸夫'77'사진) 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는 "일본 정부는 4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다시 원전을 재가동하려고 한다"며 "민주적인 측면에서나 과학적인 입장에서 원전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도쿄대 물리학과 교수인 야마구치 대표는 "후쿠시마 사태에서 보듯 원자력은 인간의 기술로 통제가 불가능한 것임을 알게 됐는데도 정부가 원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아베 정권은 경제단체의 의견을 존중하는 입장이어서 원전을 운영하는 9개 전력회사를 위해 재가동을 하는 것"이라며 "원전 재가동으로 일본은 다시 안전을 위협받게 됐다"고 했다.
그는 "원전이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했다고 해서 절대 안전한 것이 아니다"며 "규제 기준에 적합한지 아닌지 서류심사만 하는 것이어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했다.
야마구치 대표는 "규제위의 다나카 순이치 위원장도 '규제위를 통과한 원전은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것뿐이지,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라면서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의 1, 2, 3호기에는 핵연료봉이 회수되지 못한 채 위험한 상태로 남아있고, 해양오염수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재가동을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정부를 성토했다.
원자력자료정보실은 1975년 원자력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과학자, 전문가들이 설립한 비영리법인으로, 후쿠시마 사태 후 회원 수(3천 명)가 그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도쿄에서 글 박병선 기자 lala@msnet.co.kr
사진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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