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미술과 즐거움

입력 2015-03-05 05:00:00

중'고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미술 시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과서를 덮고 그림을 그리는 실기 시간이었다. 대부분 재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방식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주제는 자유롭게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한정적이었으나 무엇이든 마음대로 표현해도 된다는 점은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공인된 놀이 시간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마음대로 그리기 일쑤였다. 실기 점수에 연연치 않은 탓도 있지만 평소 수업 시간에는 금기된 일들이 가능했다. 예컨대 낙서가 용인되는 시간이었고, 암기를 잊어도 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표현이라는 본능적 욕구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처럼 예술을 즐긴 적은 많지 않았다. 물론 그보다 어린 시절에도 무언가를 그리면서 놀았지만 성격은 조금 달랐다. 중'고교 시절의 미술 실기는 사춘기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이해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갈수록 답답해지는 날들 속에서 미술을 통한 표현은 일종의 해방구나 다름없었다. 모든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결과물들을 보고 있으면 언어로 정리되지 못한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당시의 즐거움은 이러한 확인의 기능으로부터 비롯됐다. 저도 모르게 복잡해진 내면을 알고 싶었고 마음 가는 대로 물감이나 목탄을 칠하면 저절로 결과가 도출되는 식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가 상담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지는 않았고, 그런 면에서 스케치북이나 작은 캔버스는 더없이 좋은 상담 공간이었다.

물론 그로 인해 스스로의 미술적 재능이 신통치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무리 실기 점수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재능이 있었다면 한 번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을 것이다. 그나마 들을 수 있었던 좋은 이야기는 정 심심하면 미술부나 한번 가입해 보라던 미술 선생의 지나가는 권유였다. 그때 선생이 보고 있던 그림은 공교롭게도 마약에 빠져 있는 밴드의 모습이었다.

사실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평가는 즐거움과 무관했다. 그것은 스스로를 알고 싶고, 또 알아가는 과정의 즐거움이었다. 만약 누군가 그림을 보다 잘 그리는 법이나 표현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요구했다면 이런 식의 흥미를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미술 실기는 그저 팍팍한 교실 속에서 잠깐 숨통을 틔우는 시간이었다. 그 숨통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예술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경험들의 영향이 컸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움이 없는 예술적 노력을 목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그처럼 곤혹스러운 순간도 없었다.

이승욱 월간 대구문화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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