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끝날 때까지 전 '시한부 검사'로 살았죠"
배우 김래원(34)은 과거 트렌디한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찾았던 인상이 강했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2003), 영화 '어린 신부'(2004) 등에서의 가볍고 유쾌한 모습이 친근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듯하다. 진중하고 무거워졌다.
최근 끝난 SBS 월화극 '펀치'에서도, 영화 '강남 1970'에서도 그랬다. 캐릭터뿐 아니라 현실 속 김래원도 그랬다.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본인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준비된 말을 쏟아냈다. "전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던 대로 하고 있을 뿐인 걸요. 30대가 지나고 나이가 더 들고, 세상을 살면서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여유가 생긴 게 아닐까요?"(웃음)
평소와 비슷했다고는 하나 '펀치' 속 박정환 검사를 연기하는 데 있어 캐릭터 구축에 조금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검사가 본인이 잘못한 일들을 바로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에서 김래원은 실제 병마와 싸우는 듯 체중까지 줄였다. 철저히 박정환이 돼 강렬한 연기를 펼친 게 오롯이 화면에서 드러났다.
김래원은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온몸으로 표현했다.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과 박정환의 끈질긴 악연(?)의 시작인 첫 회부터 그랬다. 박정환이 조사실 창밖에 매달려 시간을 끈 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의 심정이었을 게다. 그 장면 속에서 김래원의 얼굴은 핏줄이 터질 듯했고,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그뿐 아니라 김래원이 나오는 신 대부분은 긴장감이 넘쳤다. "당연히 창밖에 매달려 있다가 죽다 살아난 사람의 얼굴이 멀쩡하면 이상한 거잖아요. 연기긴 하지만 진짜로 그 상황이라고 믿고 싶었어요. 작은 부분도 시청자들이 믿게끔 해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요."(웃음)
드라마가 끝나고 나니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사실 제작진이 김래원에게 원한 연기는 달랐다고 한다. 초반에는 의견 충돌도 꽤 있었을 정도다. "박정환은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내면의 모습을 잘 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PD님이 '왜 연기를 안 하느냐', '표정을 지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연기하는 거였는데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나 봐요. 나중에 제 연기를 보고 뭘 하는지 알겠다고는 하셨는데, '화가 나면 화가 난 듯, 기분 나쁘면 나쁜 티가 나야 하는데 안 난다. 중학생 수준으로 맞춰 이해하기 쉽게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흔들려서 바뀌긴 했지만, 저는 티가 안 나면 시청자들이 '쟤는 기분이 지금 이래서 그런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건데…."
김래원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연기할 때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카메라가 찍는다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사실 난 배우들이 대사를 안 하고 약간 불친절한 게 좋다.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몰입, 그 상황을 이해해 뭔가를 느끼는 게 좋다. 그게 아니면 억지 같다"고 짚었다.
그동안의 불만과 응어리를 쏟아내는 것 같다고 하자 김래원은 "그렇게 들렸나요?"라고 정정했다. "저는 박경수 작가님 작품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았을 뿐이에요. PD님은 선장이시고, 두 분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장이 가는 방향에서 배우가 중간에 재주를 부리고 뽐을 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라야죠. 전 감독님들이 하라는 대로 다 맞추는 스타일이에요."(웃음)
김래원은 영화 '강남1970'에서 호흡을 맞춘 유하 감독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내비쳤다. '펀치' 4회가 끝날 즈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연락을 했다. "'강남 1970'의 용기를 연기하면서 '펀치'의 박정환을 좀 더 잘 연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님에게 연기에 대해 또 많이 배웠다"는 김래원.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지금의 분위기가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이유도 있겠지만, 유하 감독과의 작업으로 인한 이유도 있는 듯싶다.
연기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나 할까. "'펀치'에 참여하면서 지인이나 관계자들께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그게 유하 감독님 영향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죠. 감독님이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전 진짜 '강남1970'에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펀치' 마지막 회는 화면이 정지하는 등 방송 사고가 났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 넘어진 것 같다. 시청자들도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 본인도 안타까울 법하다. "촬영을 당일 날까지 했어요. 제작진이 완성도 있게 만들려고, 욕심내서 편집을 늦게까지 하느라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요. 모두의 책임이죠. 잘 마무리하려고 한 거니, 방송 사고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태준과 박정환 등 등장인물들이 난관에 부닥쳤을 때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먹었던 '자장면 먹방'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래원은 시청자들을 군침 돌게 했던, 그 장면을 사실 처음에는 의심했다.
"1회 때부터 자장면 신이 나왔잖아요. 처음에는 작가님의 의도를 모르니깐 '이게 왜 나오지? 둘이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상적인 대사를 넣은 건가?'라고 생각했죠. 자장면이 그렇게 중요한 소품이 될지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끝까지 중요한 소품으로 끌고 가시더라고요. 탕수육이 없는 이유는 뭐냐고요? 둘 다 배고프게 살아왔으니 자장면으로만 그렇게 잡고 가신 게 아닐까요?"(웃음)
결혼 적령기인 김래원은 "이성에 대해 닫아놓지는 않았다"고 했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다. "'강남 1970' 촬영 전에 데이트도 하고 가끔 연락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알아갈 만할 때, 자연스럽게 멀어졌어요. 영화 속 역할이 중요하고 영화 출연이 정말 욕심이 났거든요. '펀치'에 참여하는 동안은 아예 시간이 없었고요. 물론 지금도 연락은 하는 사이긴 하지만, 지금은 연기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두고 싶어요. 나이를 더 먹고 그렇게 하긴 싫거든요. 나이 먹어 연기에 집착하면 제 옆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힘들 것 같아서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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