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원전 사고, 너무 무섭다

입력 2015-03-04 05:00:00

지난주에 일본 후쿠시마를 다녀왔다.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4년.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은 여전했다. 원전에서 멀게는 30, 40㎞ 떨어진 마을은 인간이 살지 않는 '유령 마을'로 변해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공원에는 어른 키만한 풀로 가득했다. 원전 가까이 갈수록 가끔 자동차만 다니고 있을 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무인지대'가 계속 펼쳐졌다.

후쿠시마현 통계로는 현재 피난 중인 주민 수는 11만9천 명. 이들은 비좁은 임시주택이나 공영주택, 혹은 친척집을 전전하며 힘겹게 생활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265조원을 복구 비용으로 쏟아부었지만, 피해지역의 3분1도 채 복구하지 못했다. 주민이 다시 살려면 산과 들, 가옥에 묻어 있는 방사능을 걷어내고 닦아내야 하는데, 얼마만큼 돈이 더 들지, 언제 끝낼지는 누구도 모른다.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는 방사능 물질인 세슘의 반감기(半減期)가 30년인 만큼 피해 지역이 안전지대로 바뀌는데 무려 600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번 피폭당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원전 관계자와 주민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사고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일본 국민들은 처음부터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인재(人災)로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외적으로는 지진과 쓰나미라는 미증유(未曾有)의 자연재해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말하고 있고,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지만 일본 내에서는 인재로 결론 내린 지 오래다. 지진과 쓰나미 대책이 전무했고, 재빠르게 대응조치를 못했기 때문에 사고를 키웠다는 것은 일본 국민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참상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쓸데없는 잡념이 꼬리를 문다. 한국의 원전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세월호 참사에 1년간 아무것도 못한 나라인데, 이런 사고가 터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원전이 99.99% 이상 안전하다고 믿고 있고 그런 사고가 결코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 0.001%의 확률로 잘못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말 잘 듣고 순종적인 일본 국민들도 이렇게 갈팡질팡하는데, 자기 목소리 높은 우리 국민들은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가. 일본 규모의 사고가 날 경우 대한민국 4분의 1이 불모(不毛)의 땅으로 변해버리고, 아비규환의 지옥도(地獄道)가 펼쳐질 것이 아닌가. 수도권에서는 원전 문제를 남의 일인 듯 건성건성 보고 있지만, 일단 사고가 났다 하면 수도권까지 방사능으로 뒤덮일 수밖에 없는 좁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음을 알고나 있을까. 그때에는 정부의 에너지 수급 계획, 경제논리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망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소심한 소시민의 잡념에 불과하지만, 후쿠시마를 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우리 현실을 돌아보자. 월성원전 1호기는 이미 재가동 결정이 났고, 영덕에는 신규 원전이 들어설 상황이다. 주민 반대는 심하지만, 정부는 원전 정책을 계속 밀어붙일 것 같다. 경북도는 한 술 더 떠 '원자력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한다. 의도는 이해하지만, 경북 동해안 지역을 원전지대로 만들어놓고 어떻게 감당할지 궁금해진다. 원전을 유치하고 재가동하는 것은 주민 선택에 달려있지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고 안전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후쿠시마 피난가옥에서 만난 40대 주부의 외침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자기 마을에 지원금을 준다고 덜컥 원전을 유치했다가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면 어찌하겠는가. 우리처럼 집 잃고 가족끼리 뿔뿔이 흩어져 떠돌기 전에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경북도 관계자나 영덕 주민들에게 후쿠시마 방문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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