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헌재가 기가 막혀

입력 2015-03-03 05:00:00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을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한 것은 '허무 개그'였다. 그러나 그와 '노빠'들의 사고방식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허무 개그를 전후한 상황을 되짚어보면 답이 나온다. 이 총리는 지명 당시 여론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검증 과정에서 여러 흠결이 드러나면서 '불가' 쪽으로 기울었다. 머릿수 싸움에서 새누리당에 질 수밖에 없는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이런 흐름을 놓치기가 아까웠을 것이다. 충청 출신 총리의 인준 반대에 따른 충청 민심의 악화도 문제였다. 여론조사는 이런 악재를 피하면서 박근혜정부에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묘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총리에 대한 여론의 흐름이 나쁘지 않았어도 여론조사를 하자고 했을까? 여론조사의 '여'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새정치연합이 집권당이고 새 총리 후보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 새누리당이 여론조사로 처리하자고 했다면 문 대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 '그만 좀 웃기시지!'가 아니었을까?

이런 사고실험은 새정치연합 내 수많은 '문재인들'의 생각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가늠케 한다. 바로 다수가 존중하는 가치나 제도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유리한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그 존재의 필요성 여부를 재단하는 태도이다. 이를 기자는 '도구적 사고'라고 명명하고 싶다. 가치나 제도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폐기할 수도, 고수할 수도 있는 도구로 격하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헌법도 간단히 뭉개버린다.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헌법에 나와 있는데도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소리가 천연덕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헌법재판소가 나라를 망친다"는 이해찬 의원의 폭언도 전혀 놀랍지 않다. 이 의원은 헌재가 나라를 망치는 이유로 헌재가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의원직 박탈은 국회의 권한인데 헌재가 이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는 헌재의 존재에 대한 절망적 무지이다. 헌법 위반에 대한 판단은 헌재의 소관이다. 국회의원의 헌법 위반도 예외가 아니다. 옛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은 그들 집단의 헌법 위반에 대한 헌법적 단죄다. 이는 헌법적 효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 의원의 말처럼 헌재가 나라를 망친다면 헌법도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헌법은 또 한 번 뭉개졌다. 새로울 것도 없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놈의 헌법" 운운하며 시범을 보였다.

이러한 태도는 사이비 좌파들의 전매특허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새정치연합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의 발언이다. 그 사건의 본질은 입만 떼면 서민을 위한다는 정당의 국회의원이 '을'중의 을인 대리기사에게 있는 대로 '갑질'했다는 것이다.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져가자 최 의원은 이를 '단순사건'으로 처리하자고 했다. 이 얼마나 편리한 도구적 사고인가. 최 의원에게 '단순사건'과 '중대사건'을 가르는 기준은 우리에게 유리한가 여부였을 뿐이다.

이렇게 내 편리한 대로 사건과 이념, 제도의 가치를 재단하는 고질병은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레닌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장래 정책을 기본적인 민주적 원리에 종속시키고 이 원리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민주적 원리를 오직 우리 당의 이해문제에 종속시킬 것인가? 잘라 말해서 나는 후자를 선호한다." 민주주의도 내 이익을 위해 간단히 버릴 수 있는 도구라는 얘기다. 이것이 '노무현'문재인'이해찬'최민희들'의 생각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는 오만 그리고 독선과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리고 오만과 독선은 필시 독재로 귀결된다. 트로츠키는 레닌의 방식이 독재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예언했다. "당이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하고 중앙위원회가 당을 대신할 것이며 이후에는 독재가 중앙위원회를 대신할 것이다." 소련 역사는 예언대로였다. 으스스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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