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북방의 불곰, 러시아를 보며

입력 2015-03-03 05:00:00

1954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뉴욕부총영사. 태국공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우즈베키스탄 대사
1954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뉴욕부총영사. 태국공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우즈베키스탄 대사

외교는 'Give & Take'가 근간

러시아, 전승행사에 남북 정상 초청

북쪽 지도자보다는 우리가 비교우위

모스크바 방문 전향적 검토하길 바라

모스크바를 갔다 왔다. 3년 만인 것 같다. 한국과 러시아 간의 장기적 미래 협력 방향을 가늠하는 부담되는 회의로 간 자리라 산천경개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지만, 서방의 경제제재로 밀고 당기는 시소게임의 한복판이라 조금은 썰렁한 분위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단위면적당 세계에서 자동차가 가장 많다는 모스크바가 아닌가. 평소 같으면 거리가 온통 트래픽으로 미어터져야 마땅할 터인데!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이 의외로 술술 풀린다. 주머니가 예전 같지 않다는 방증이리라. 그래도 불곰 같은 러시아 연방인 만큼 범람하는 화려한 야경에 사람 그득그득한 사무실 빌딩들이 축제같이 밝기만 하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에게도 꺾이지 않았던 불굴의 오만과 고집이 올올이 서 있음을 본다.

한-러 관계가 기대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한국 측에서 많이 미온적이라고, 남-북-러 삼각 협력도 미지근하다고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을 마치 미국의 주구(走狗) 정도로 매도하기도 한다. 학자들이라 입들이 자유롭다. 한국의 역사적, 지정학적 배경까지 동원하여 분위기를 순화시키기도 하고, 대국 러시아가 좀 더 세계적으로, 동북아적으로 더 크게 놀아야 하지 않는가라고 대응하기도 한다. 은근슬쩍 중국과도 비교해 준다. 중국은 미국과 첨예하게 부딪치지도 않으면서 정치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지 않은가. 경제의 젖줄인 에너지 확보에도 연속 공전의 히트를 치고, BRICs 국가 간 신개발은행(N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신국제은행들을 줄줄이 주도적으로 창설하며, 역외 위안화 허브를 대폭 확대해 나감으로써 G-one을 향한 존재감을 과시해 나가는 게 보이지 않는가. 러시아도 중국같이 통 큰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토로해 보지만, 귀에 쏙쏙 들리지는 않는가 싶다.

새로운 남-북-러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중국 주도이지만 러시아가 AIIB에 참여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러시아가 AIIB에 참여하게 되면,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의 일방적 패권의 팽창을 상당히 중화시킬 수 있을 것이며, 한국, 일본 등 동북아 핵심 국가들의 참여까지 궁극으로 확보하는 데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겠다고, 또한 러시아로서는 AIIB 재원을 극동 시베리아 개발 사업에도 상당히 활용할 수 있겠다고 했다. AIIB 같은 국제 금융기관이 극동 시베리아에 투자함에 따라 현재 같은 지지부진한 남-북-러 협력 창출에 중국까지 가세시킴으로써 다자적 접근의 새로운 협력 분위기를 증폭시키게 될 거라고도 제언했다.

러시아가 AIIB 참여에 썩 마음 내키지 않으면, 가칭 극동개발은행(Far East Development Bank)-러시아가 주도적으로 나서며 중국'한국'북한'몽골'일본 등이 참여하는 별도의 국제개발은행을 설립하며, 형성되는 재원을 주로 북한을 포함하는 극동지역 개발에 전력 투입하자는 취지-의 설립까지도 검토할 수 있겠다고 제안했다. 사실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극동 시베리아의 개발에는 엄청난 재원이 장기적으로 필요할 것이며, 한두 나라가 감당하기엔 큰 부담이 될 것인바. 극동개발은행이라는 국제 금융기관을 통하게 되면 부담도 해소되고 여타 자본들의 극동 개발 사업 참여의 위험성도 감소시키며, 그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해 봤다.

그러나 러시아 측 인사들은 오는 5월 9일,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식에 남북 정상을 공히 초청해 놓은 상황임을 거듭 강조하며, 두 정상이 함께 참석할 경우, 이 승전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인바,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그게 바로 박근혜 대통령께서 제창하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 동북아 평화 협력,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까지 아우르는 데 긍정 기여하게 될 것이라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기도 하다. 외교란 모름지기 'Give & Take'가 근간(根幹), 먼저 줘야 받을 게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래도 북쪽의 젊은 지도자보다는 비교우위에 있음은 천하가 아는 터, 타이밍 놓쳐 받을 감사의 명분조차 쌓지 못하기보단 모스크바 방문을 가급적 조속히 전향적으로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전대완/계명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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