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청 시대 하회마을] ⑥해학과 풍자, 익살의 하회탈춤

입력 2015-03-03 05:00:00

"간통죄 없앴으니 부네 불러서 놀아 보시더∼" 사회 풍자에 관객들 폭소

하회탈춤 공연을 마친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원들이 탈을 벗어들고 본지 취재진의 촬영 요구에 포즈를 잡았다. 공연 직후 땀에 흠뻑 젖은 얼굴이지만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왼쪽부터 양반탈 최영호(45) 씨와 선비탈 권순찬(59), 부네탈 손상락(56), 백정탈 황영호(42), 중탈 김종흥(60), 주지1 권경은(35), 그리고 앞줄 왼쪽부터 주지2 정규식(33), 각시탈 손영애(53), 초랭이 류종훈(44), 이매탈 김오중(57), 할미탈 권영국(49) 씨. 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하회탈춤 공연을 마친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원들이 탈을 벗어들고 본지 취재진의 촬영 요구에 포즈를 잡았다. 공연 직후 땀에 흠뻑 젖은 얼굴이지만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왼쪽부터 양반탈 최영호(45) 씨와 선비탈 권순찬(59), 부네탈 손상락(56), 백정탈 황영호(42), 중탈 김종흥(60), 주지1 권경은(35), 그리고 앞줄 왼쪽부터 주지2 정규식(33), 각시탈 손영애(53), 초랭이 류종훈(44), 이매탈 김오중(57), 할미탈 권영국(49) 씨. 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백정탈이 \
백정탈이 \'소불알이 양기에 좋다\'고 이야기하자 처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양반탈과 선비탈이 소불알을 움켜쥐며 서로 \'지불알\'(자신의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공연되고 있는 하회마을 탈놀이전수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철임에도 객석이 거의 다 찰 정도로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사진은 백정탈이 갓 잡은 소에서 떼어 낸 뜨끈뜨끈한 염통을 사라고 하면서 관객들을 희롱하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공연되고 있는 하회마을 탈놀이전수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철임에도 객석이 거의 다 찰 정도로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사진은 백정탈이 갓 잡은 소에서 떼어 낸 뜨끈뜨끈한 염통을 사라고 하면서 관객들을 희롱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약 800년 전인 12세기 중엽 시작됐으며, 하회마을 주민들이 주도해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해 왔다. 하회별신굿은 해학과 풍자, 익살로 사회 계층 간 모순, 갈등을 큰 거부감 없이 풀어내는 정신문화적 민속놀이. 세계에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봉건시대에서도 하회별신굿은 양반, 선비들을 희롱하는 상민들의 비판이 너그러움으로 수용되면서 피지배계층의 억눌린 감정과 저항을 해소해 내는 문화적 기구로서 적절한 역할을 다해 왔다. 특히 하회탈의 예술적 가치도 세계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사회통합을 위한 하회탈춤의 대동화합 정신은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가치 측면에서 볼 때 지구촌 세계인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대를 이어 온 하회별신굿탈놀이

"경북도는 지난해 개도 700주년을 맞았습니다. 나이로 따진다면 '경북이'는 올해로 만 700살이 되는 셈이지요."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임형규(62) 회장은 경북도가 개도 700주년에 따라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전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다시 말해 '경북이'와 '하회'의 만남은 보통 인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회탈춤이 고려 중기에 만들어졌으니 나이로 치면 올해 800살이란다. 그래서 경북이는 하회보다 100살 연하가 된다고. 이 때문에 이사 오는 경북이는 하회를 무시하면 절대 안 된다고 미리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앞세우고 으름장이다. 하회탈춤도 해학이지만 그의 주장도 해학이다. 임 회장이 풀어놓는 하회탈춤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고려 중기에 시작돼 고려의 몰락과 이성계의 조선개국을 거쳐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을 때에도 명맥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임 회장은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뀌었을 때도,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난 이후에도 무진년(1928) 공연 등 하회별신굿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고 역설한다. 이처럼 800년의 역사를 이어 온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질긴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회별신굿 부네탈 손상락(56) 학예사는 이렇게 풀이한다.

"탈에 얽힌 허도령의 전설도 신령스럽지만 마을 구성원 모두가 하회탈을 신성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탈춤의 생산성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손 학예사는 지금도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원만큼은 하회탈의 신령스러움을 믿고 있고 탈춤이 액막이를 해주고 복을 내린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하회탈은 회원들을 하나로 엮어 내는 중요한 상징이었고, 탈춤은 구성원 상호 간 건전한 비판으로 갈등을 풀면서 집단성과 끈끈한 관계를 오래도록 맺어 내려온 문화가 됐다는 설명이다.

"탈춤을 보는 관람객들의 자발적인 기부, 즉 건립 기능이 부가되어 있어서 수백 년간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이어 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손 학예사는 최근 들어 각시탈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이 부쩍 좋아졌다고 했다. 최근 들어서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란다.

◆해학과 풍자, 익살의 카타르시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먼저 악사들이 입장하고 각시탈의 무동마당이 열린 다음, 곧장 삼베 포대기를 덮어쓴 탈춤꾼이 상상의 동물인 주지 암수가 한바탕 싸움을 연출하는 주지마당으로 이어진다.

암수의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는 모습은 다산과 풍농을 기원한다. 이어 흥겨운 가락에 맞춰 백정마당이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할미마당과 파계승마당, 양반선비마당으로 이어진다. 원래는 당제와 혼례마당, 신방마당, 허천거리굿이 있으나 상설공연에선 하지 않는다.

"샌님들요. 올해는 3'1절 만세 소리가 모텔에서 터져 나온다 카지요. 헤헤헤.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도 없앳다 카이, 우리도 부네나 불러서 신나게 춤이나 추고 놀아 보시더."

파계승 마당에서 초랭이의 애드리브(즉흥 대사)에 관객들이 박장대소한다. 악사들의 장단에 흥겨운 듯 달랑춤을 추는 초랭이의 익살이 사회지도층을 향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펄펄 살아 있는 무풍(舞諷'춤으로 풍자하다)이라고 해도 탈 잡을 게 하나 없다.

쪽박을 찬 할미가 베틀에 앉아 한평생 궁핍하게 살아온 신세타령을 하는 대사에서도 봉건시대 보수적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민중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할마이 어제 장에 가서 사 온 청어는 다 먹었나"라는 물음에 "어제저녁 당신 한 마리, 내 아홉 마리, 오늘 아침 내 아홉 마리, 당신 한 마리, 다 먹었잖나"라고 하는 할미탈의 억지 반박 속에는 가부장적 권위를 부정하고, 남존여비의 상하 관계를 뒤집어 놓고자 하는 남녀평등 사상이 해학적으로 깔려 있다.

"이 소 염통을 사서 먹으면 오줄없는 사람 오줄 생기고, 염치없는 사람 염치 생기니더"라고 소를 때려잡아 눕힌 백정탈이 소 염통을 들고 외친다. 줏대 없고 염치없이 눈치만 보고 사는 사람은 소 염통만도 못하다는 것을 풍자해 빗댄 대사다.

양반선비마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소부랄이 양기에 좋다'는 백정 말에 양반탈, 선비탈은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 그만 땅바닥에 떨어뜨린다.

소불알을 주워든 할미탈이 "양반도 지부랄이라 카고, 선비도 지부랄이라 카고, 백정도 지부랄이라고 카는데 도대체 이 부랄이 뉘 부랄이로?" 하면서 관객들을 향해 비아냥을 쏟아 낸다.

"내 팔십 평생 소부랄을 가지고 지부랄이라고 하는 놈들은 생전 처음 본다"는 할미탈의 익살에 즉각 폭소가 터지는 것은 물론이다.

소불알을 소재로 겉으로는 성을 금기시하면서도 은밀하게 즐기는 지배계층의 도덕적 위선을 익살과 해학으로 풍자한 것. 지체와 학식을 자랑하며 부네나 희롱하는 당시 양반 선비나, 좋은 것은 다 자기들이 한 것이라고 공치사만 늘어놓는 현 정치권의 후안무치나 한 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지배계층을 조롱하듯 웃음거리로 만드는 탈꾼도, 이를 보는 관객도 모두가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남녀노소가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하회별신굿의 익살은 새로운 소통 방식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사시사철 전천후 야외공연으로 정착

"올겨울에는 엄동설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매회 객석에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선비탈 권순찬(59) 씨는 살을 에는 듯한 겨울 날씨에도 하회별신굿탈놀이 야외 공연의 성황은 예외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올겨울 관객들은 추위를 무색게 할 정도로 몰려들었다. 인기가 이러하니 한 해 공연 횟수가 무려 250회에 달한다. 230회의 상설공연에다 20회의 초청공연이 보태져 사흘에 이틀꼴로 공연이 예정돼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처럼 연중 상설공연이 정착된 국내탈춤은 아직 없다. 13개 국내탈춤 가운데 양주별산대와 강릉 관노가면극이 상설공연에 들어갔다가 관객을 확보하지 못해 중단됐다.

'나 홀로' 공연은 다른 탈춤 단체도 마찬가지다. 인천시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은율탈춤도 연간 4개월 정도의 상설공연을 하지만 관객이 모이지 않아 애를 태운다. 인근 군부대 장병들을 동원해야만 겨우 공연 모양새를 낼 수 있는 형편이다. 부산 수영야류도, 봉산탈춤, 강령탈춤, 북청사자놀음도 공연을 하고 싶지만 입장은 매한가지다. 밀양 백중놀이만 여름 한철 영남루 아래서 공연하면서 겨우 체면을 세우고 있다.

"탈춤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수준도 이제는 세계적입니다. 탈춤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탄성과 박수, 탄식 등은 탈춤꾼들의 대사에 버금갈 정도로 기분과 감정이 잔뜩 실려 있지요."

이매탈 김오중(57) 씨는 관람에 몰입하는 관객들의 자세를 의식할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춤사위와 대사에 신중을 기하면서 매회 공연에 들어가기 전 예행연습으로 철저히 준비한다고 말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973년 하회가면극연구회가 창설된 이래 1994년, 서울정도 600주년 기념 문화축제 공연을 비롯해 1995년 제1회 광주 비엔날레 특별공연, 제15대 대통령 취임행사 축하공연, 인천 전국체전 개막공연, 2002년 월드컵 기획공연, 2004년 아시아개발은행 총회 초청공연, 2005년 부산 APEC총회 초청공연, 부시 미국 대통령 안동방문 환영공연, 2011년 세계한인회장대회 초청공연, 2013년 전국생활체육대축전 특별공연 등 굵직굵직한 행사에 참가한 국내공연 실적이 무려 2천여 건에 달한다.

해외공연도 1995년 미국 케네디센터 공연,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공연, 1997년 한-영 교류 200주년 기념공연, 2000년 영국 밀레니엄 돔 한국의 날 행사 축하공연, 2002년 프랑스 파리 가을축제 초청공연, 2005년 독일 베를린축제, 2008년 싱가포르 세계축제박람회 초청공연, 2011년 인도네시아 솔로 국제페스티벌, 2012년 미국 러시아 문화원 초청공연 등 대륙권마다 공연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지금까지 90여 차례에 이른다.

임형규 회장은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이제 명실 공히 웅도 경북의 신청사 이전을 맞이해 경북의 대표적인 무형 문화재로서 자리 잡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본다"면서 "세계인들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견인차 역할을 다해 새로운 한류를 일으켜 내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신도청권전략기획팀 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심용훈 객원기자 goodi6864@naver.com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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