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중저가 인생

입력 2015-02-25 05:00:00

몇 해 전에 한 이름난 도예가의 가마(窯)에 간 적이 있다. 청년 3명이 가마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모두 도예를 배우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도예가는 명성도 얻었고, 나이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물레질이나 불 때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제자들의 일이란 땔감을 모아오거나 가마 주변을 청소하는 것이 전부였다. 3년 동안 허드렛일만 한 제자도 있었다.

"좀 가르쳐 주지 그래요?"

도예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나도 젊은 시절 이름난 도예가 밑에서 일했다. 낮에는 종일 땔감을 마련했고, 모두 잠든 밤에 몰래 물레질을 했다. 불 때는 것도 멀리서 바라만 봤다"고 했다.

"당신이 그렇게 어렵게 배웠으니 제자들도 그래야 한단 말이오?"

내 속내를 읽었는지 그는 "남의 것을 모방한다고 좋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좋은 도자기는 스스로 배우고 터득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설에 만난 서른 살짜리 친척 동생은 "일할만한 데가 없다. 괜찮은 자리는 선배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동생은 집에서 컴퓨터로 아르바이트하는데, 한 달에 70만~80만원쯤 번다고 했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바에야 적게 벌고 적게 쓰며 편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는데 본인은 실실 웃었다.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에 태어난 일본 젊은이 중에 욕망을 포기하고 현재에 만족하는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와 닮은꼴이었다. 이들은 취업 전쟁, 주택난, 사내 경쟁에 시달리느니 아예 포기하고 중저가 옷을 입고, 중저가 음식을 먹는 유유자적한 '중저가 인생'에 만족한다.

유유자적하는 삶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다수의 젊은이들이 그런 태도를 갖는 사회는 위험하다. 기성세대가 후배세대에게 양보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어떤 세대도 자기 밥그릇을 다음 세대에 자발적으로 던져주지 않는다. 모든 세대는 저 도예가처럼 스스로 일어섰다.

경쟁은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 그러나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던 배경은 '경쟁'이었다. 일부 청년세대가 유유자적하는 삶으로도 '중저가 인생'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선배세대들의 성취 덕분이다. 지금 청년세대가 유유자적할 경우 그다음에 올 청년세대도 '유유자적 중저가 인생'을 누릴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세끼 밥도 어려울 것이다.

유유자적은 일정한 성취를 이룬 노인이 물러나서 누리는 삶이지, 청년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홀로 햄버거와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간난신고 끝에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함께 건배를 외치는 삶 또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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