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이다에게

입력 2015-02-24 05:00:00

영화관은 대목이라고 하는데 독립영화관은 여전히 썰렁했다. 그곳에서 영화 를 만났다. 첫 장면부터 끝 장면까지 영화 속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흰 눈발 속으로 영화가 파고들었는지, 영화 속으로 눈발이 날렸는지 낯설면서도 익숙한 눈의 이미지가 이다를 감싸고 있었다. 이다는 유독 많이 걷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자신을 찾아 헤매는 몸짓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수녀원 생활이 전부인 이다에게 수녀복 밖의 빨간 머리카락과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다는 또 다른 색깔의 길이었지만, 이다는 '그리고 나서'라는 물음을 던진다. 자신을 알아가는 이다의 눈빛에는 흑백 필름만 스쳐 지나가고 있었는지, 아니면 이미 바다를 본 것인지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클로즈업이 아니라 화면 한쪽으로 밀어내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이다는 아직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다가 가는 길을 우리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너는 누구인지를 영화는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명절 연휴 동안 딸들과 함께 지냈다. 지나간 시간들과 새 학기에 대한 부담과 흐릿한 내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약간의 설렘에 대해 그들은 이야기했다. 영화 속 이다처럼 그들도 걷고 있는 중이다. 그들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안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 몸부림이 길이 되고,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 날 바다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이 만만치 않은지 그들의 얼굴에도 흰 눈발이 비친다. 눈발이란 영원히 붙잡히지 않을 꿈 같기도 하지만 이미 우리의 목덜미를 감고 있는 삶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자동차가 달려가는 이미 만들어진 길을 그저 그것이 삶이라고, 마치 평범이 정답인 것처럼 급하게 따라나서는 것은 아닐까.

이제 내일이면 각자 가방을 챙겨들고 그들 또한 제 안으로 나있는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가다가 방향을 잃으면 잠시 주저앉기도 하고 엉뚱한 곳을 기웃거리기도 하겠지만, 부디 멈추지 말기를 바라본다. 마치 연어가 물길을 거슬러 가듯 마지막으로 보여준 이다의 길처럼 그들도 온 힘을 다해 걷다 보면 자신의 내면과 마주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삶의 중심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화면 한쪽에 세워질 것임을 이다도, 그리고 딸들도 알아 갈 것이다. 보들레르식으로 말하자면 '글쓰기란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해 있다는 것과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 주는 것'이라는 말에 이끌려 나 또한 여기에 와 있듯이,

이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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