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김영란법과 CCTV

입력 2015-02-17 05:00:00

CCTV는 애물단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모습과 행동이 타인에게 노출된다 생각하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하물며 양심에 걸리거나,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려 들면 CCTV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그러니 CCTV를 설치하려 들면 이해 당사자들이 사생활 침해라며 눈에 쌍심지를 켜는 것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그래도 CCTV는 든든한 해결사다. 지난달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크림빵 뺑소니 사건 피의자가 자수한 것도 CCTV 역할이 컸다. 흐릿한 화질로 차종이 BMW라고 알려졌을 때만 해도 꼭꼭 숨었던 범인은 또 다른 CCTV를 통해 용의차량이 BMW가 아닌 윈스톰으로 밝혀지고 수사망이 좁혀지자 결국 사건 19일 만에 자수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전국적 이슈로 만든 것도 CCTV다. 네 살배기 어린아이가 보육교사의 핵 펀치를 맞고 나동그라지고, 이를 지켜본 아이들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스스로 무릎을 꿇는 화면이 공개되자 전국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났다. 지나가던 여고생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고선 오리발을 내밀었던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백기를 든 사건도 마찬가지다. 사건 초 '자신 외에 다른 남성이 있었다'며 경찰이 '이 남성을 오인한 것'이라고 발뺌하다 CCTV 영상에 자신만이 찍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경찰이 정밀 분석에 들어가자 결국 고개를 떨궜다.

이쯤 되면 CCTV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보물단지다. 범죄 피해를 입은 당사자나 그 가족의 입장에선 은인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를 달았다고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동 학대 범죄가 이를 설치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했다는 항변도 나온다. 그러나 CCTV가 있어도 이 정도라고 보는 편이 옳다. CCTV가 없으니 몰라서 넘어가고, 증거가 없어 묻히는 사건들이 훨씬 많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세상은 이미 CCTV 천지다. 그래도 '보통사람'이라면 꿈쩍없다. 아무리 찍어댄다고 고개를 숙일 이유도, 얼굴을 가릴 이유도 없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적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많다.

김영란법도 애물단지다. 좋은 식당에서 고급술과 밥을 얻어먹고, 필요하면 돈도 얻어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다. 이 법은 공직자는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핵심이다. 공직자의 범위엔 국공립기관 재직자와 언론기관,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포함시켰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의 CCTV 같은 역할이 기대된다. 이 법이 통과되면 그동안 거액의 뇌물을 받아먹고서도 툭하면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가던 공직자들에겐 올가미가 된다. 입법권과 국정감사권, 예'결산심사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이라면 말할 나위 없다.

스스로를 옭아맬 수도 있는 법을 만드는데 국회의원들이 반길 리 없다. 겉으로는 통과시킨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유명무실화할 구실만 찾고 있다. 2012년 8월 발의된 법이 돌고 돌아 아직 국회에 머물고 있는 이유다.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이 법은 법사위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며 다시 발목이 잡혔다. 국회의원들은 애꿎은 언론인을 들먹거린다. 이 법이 통과되면 기자들도 술밥 얻어먹긴 틀렸으니 반대하라는 뉘앙스다. 이완구 총리는 후보자가 된 후 마치 기자들을 위해 김영란법을 막고 있는 것처럼 토로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국민들은 안다. 김영란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 위헌 가능성 때문도 아니고, 기자들을 위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보통 사람들이 CCTV를 의식하지 않고 살 듯 대다수 국민들은 김영란법이 통과돼도 이를 의식할 필요 없이 산다. 김영란법이 통과되기를 바라는 것은 CCTV가 범죄 해결사 노릇을 하듯 이 법이 이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서다. 국회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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