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에세이 산책] 두 나라의 지갑분실 보고서

입력 2015-02-17 05:00:00

우린 가끔 그런 꿈을 꾼다. 돈벼락 맞는 꿈. 하늘에서 돈이 흰 눈처럼 내린다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울까?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우리에게 있었다지. 돈을 줍는 사람들은 얼마나 신났을까. 닥치는 대로 돈을 줍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이렇듯 눈앞에 공돈 아닌 공돈을 두고 초연할 사람은 드물다. 만일 자기 돈이 아닌 돈을 '돌' 보듯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누굴까?

나는 원래 뭘 잘 흘리고 다녀서 종종 휴대폰도 잃어버리고 지갑도 자주 잃어버린다. 한 번은 오스트리아 빈 인근의 로젠부르그(장미의 성)에서 열리는 '중세 축제장'에 갔다. 중세시대 갑옷을 입은 병사, 드레스를 입고 귀부인 행세를 하는 여인들, 해머(망치)로 쇠를 내리치는 대장장이 등이 등장해 영화에서나 봄직한 축제였다.

정신없이 구경하다 어느 순간 보니, 지갑이 없어졌다. 아뿔싸. 애꿎은 머리를 쥐어박으며 구경이고 뭐고 지갑을 찾느라 정신이 아득해졌다. 허둥대며 지갑을 찾고 있는 내게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어떤 젊은 아가씨였다. "무엇을 찾느냐?" "지갑을 잃어버렸다." "돈이 얼마 들어 있느냐?" "300유로(한화 45만원 정도)쯤." 내 말을 들은 아가씨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축제장 입구에 있는 매표소로 데리고 가더니 "이 지갑이냐?"며 아가씨가 내가 잃어버린 지갑을 내밀었다. 지갑 속에는 돈이 그대로 들어 있고 비자, 운전면허증 등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지갑을 주워 매표소로 가져온 것이었다. 그때의 그 기분이란, 정말 가슴 벅찬 날이었다.

지난해 한국에 와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을 한 잔 하고 그 다음 날 깨어보니 지갑이 없었다. 돈은 둘째 치고 비자, 운전면허 이런 게 걱정이 되었다. 지갑을 찾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술집에도 가보고 속절없이 지나온 길을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지갑을 찾을 길이 없었다. 여러 가지 2차 피해가 예상된 채로 자포자기했는데 하루가 지났을까 어떤 택시기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갑을 주웠다면서 어떻게 돌려주면 좋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돈은 없고 각종 카드들만 있다는 얘기를 했다. 돈은 없어도 좋았다. 각종 증명서만 찾은 걸로도 행운이었다. 언감생심 분실된 지갑 속의 돈을 찾다니.

이 두 가지 다른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바로 '믿음과 불신'이라는 치명적인 생각들이다. 마치 도미노처럼 잃어버린 물건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사람은 자신도 그러한 행동을 할 확률이 높다. 얼마 전 도로에 뿌려진 돈들이 거의 되돌아왔다는데, 이렇듯 되돌아온 양심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잃어버린 지갑 속의 돈이고 카드고 모두 돌려받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자기 돈이 아니면 돈을 '돌' 보듯이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런 믿음직한 사회가 올 거라고.

군위체험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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