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인성교육은 '시민교육'이다

입력 2015-02-16 05:00:00

1956년 경기도 화성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1956년 경기도 화성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미국에서 특별한 커피 시키면 '당연'

한국에서 같은 주문하면 '진상' 취급

한국인의 '마카 커피'는 다양성 부족

각자의 커피를 인정하는 것이 인성교육

어떤 사람이 커피숍에서 카페인이 없는 카푸치노를 주문하면서 탈지 우유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상상해보자. 이 커피숍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있다면 고객은 보통 사람들이 주문하지 않는 것을 주문한다고 해서 주저하지도 않을 것이며, 종업원 역시 아무런 소리 없이 주문한 것을 정확하게 제공할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 최고의 맛은 개인의 특별한 취향에 맞는 맛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커피숍이 한국의 서울에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카페인이 없는 것으로 탈지 우유로 만든 카푸치노 만들어 주세요." 아마 주문자도 스스로 별난 취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머뭇거리고, 말도 되지 않는 주문을 하는 또 한 명의 진상 고객을 만났다는 듯이 짜증 내는 종업원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면서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최고의 맛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미국에선 자기만의 '특별함'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한국에서는 별난 '일탈'로 여겨지고, 한국에선 조화라는 미덕이 미국 사회에서는 단순한 순응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이 간단한 사실을 비교 연구한 심리학 논문을 여기서 소개한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소위 '인성교육진흥법'이 2015년 7월부터 시행되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에 인성교육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인성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직원을 아랫사람 다루듯 하는 갑질 사건, 보육원 어린이집 폭행사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군부대 성폭력 사건. 이 모든 사건들이 계산될 수 있는 '결과'만 중시하고 인성은 등한시한 입시위주 교육의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모두가 인성교육에는 찬성하지만 "우리가 교육해야 할 '인성'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은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인성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좋아하는 가치들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인성교육은 어떤 덕목을 추구할까? 신뢰, 존중, 책임, 공평, 보살핌, 그리고 시민정신의 여섯 가지 덕목이다. 이것도 물론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좋은 가치들이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차이는 본질적이다. 한국의 인성교육은 예와 효를 앞세우고, 미국의 인성교육은 시민정신으로 방점을 찍는다.

여기서 우린 인성교육의 방향을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첫째, 인성교육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전제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덕성의 위기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전통적 공통가치의 붕괴에서 기인한다. 이제 사람들은 다양한 취향과 가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 '마카 커피'처럼 모두가 더 이상 똑같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가치와 덕목도 마찬가지다.

둘째, 인성교육은 개인의 인격과 존엄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면 별난 사람 취급받고, 사회의 지배적인 기준에 순응하면 괜찮은 사람으로 대우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비인격적 처우에 대항할 수 있단 말인가? 어린아이조차 독립된 인격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인성교육은 시작된다.

끝으로 인성교육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민교육'이다. 우리는 다른 가치를 가진 낯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데 미숙하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사실 사람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시민의식이다. 인성교육은 결코 단순한 예절 교육이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인성교육이라면 나도 특별한 커피 주문을 해봐야겠다.

이진우/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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