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폼 잡고 '센 척' 허세 부리고…그럴 땐 좀 웃겨보이데∼"

입력 2015-02-07 05:00:00

아이들의 이야기는… 중2들의 대화

중학교 2학년 학생 5명과 곧 중학교 2학년이 되는 학생 1명이
중학교 2학년 학생 5명과 곧 중학교 2학년이 되는 학생 1명이 '중2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장 왼쪽부터 신예주(학남중 2)'남강미(관음중 2)'최은서(관천중 2) 양, 김다건(교동중 2)'박정민(칠곡중 2)'이찬우(학남중 1) 군. 이화섭 기자

"어른들이 그냥 끼워 맞추기한 것 같아요."

'중2병'에 대해 실제 중2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기자가 만난 중2 학생들은 주변 사람들이 덧씌운 '중2병'의 이미지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중 과격한 모습을 보이는 일부분일 뿐이지 우리 전체의 모습이라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구지역 중2 학생들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중2 학생으로서의 삶을 정리해봤다.

◆"어른들이 그냥 붙인 말 같아요"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중2 학생들은 '중2병'이라는 말을 중학교 2학년으로 진급할 때 제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예진(성곡중 2) 양은 "중학교 2학년이 되니 친척들부터 시작해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중2 됐으니 중2병 걸리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던질 때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다시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가 남한의 중2 학생들이 무서워서'라는 우스갯소리 때문에 중2병의 존재를 안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남강미(관음중 2) 양은 "중학교 2학년이 되기 전에 '북한이 못 쳐들어오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중학교 2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군사훈련 받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중2가 되고 나서야 주변에서 '중2병 걸리는 것 아니냐'고 놀리면서 중2병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중2병 증세'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때는 중2 때가 아닌 중1 때라고 주장하는 학생도 있었다. 오히려 학교가 바뀌는 중1 때 싸우거나 서열을 정하는 경우가 많고, 학교 선배를 대상으로 하는 첫사랑도 이때 많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신예주(학남중 2) 양은 "1학년 때 학생들 사이에 서열 만들고 3학년 오빠 쫓아다니는 아이들이 많다"며 "쓸데없이 폼 잡는 것도 초등학교 6학년 때나 중1 때는 그나마 봐 주겠는데 중2 때 그러면 뭔가 웃겨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2라는 나이를 '병'이라고 규정한 이 말은 당연히 중2 학생들에게는 달가울 리 없다. 이도윤(능인중 2) 군은 "중2병 증세라고 말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사춘기 나이에 다들 경험하는 것들 아닌가"라며 "세상에 사춘기를 겪는 나이대의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중2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은서(관천중 2) 양은 "중1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도 아니고 중3처럼 고교 진학을 고민하는 시기도 아니라 '제일 놀기 좋고 생각할 게 없는 시기'를 중2 때로 보는 것 같다"며 "그래서 어른들이 끼워 맞추기식으로 만만한 중2를 거론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발 오그라드는 짓 하는 친구들은 있죠"

그렇다면, 곧 중3이 되는 중2들이 보낸 자신들의 중2 시절은 어땠을까. 모두들 "별다른 것 없었다"고 말했다. 김다건(교동중 2) 군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할 때는 여러 가지가 달라지니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났는데 중1에서 중2가 될 때는 달라진다는 느낌을 전혀 못 받았다"고 말했다. 신예주 양은 "중학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1학년 때와는 다르게 2학년 때는 중학교에 대해 어느 정도 아니까 크게 달라지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별다른 것 없는 중2의 삶을 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중2병의 특징을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지는 않는다. 더러는 감수성에 푹 젖기도 하고 혹은 '센 척'과 허세를 부릴 때도 있다. 기자가 만난 중2 학생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중2병 증상의 실제 예를 들려주었는데, 자신들도 '손발이 오글거리는 짓'이라 생각했다.

남강미 양은 "정말 조용한 친구였는데 우연히 들어가 본 친구의 SNS에서 '나는 시간 속에 잠겨 산다'고 써 놓은 걸 봤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굳이 감수성이 물씬 묻어나는 말을 남들이 다 보는 SNS에 써 놓은 게 심히 '중2병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또 걸어다니면서 괜히 침을 뱉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팔자걸음으로 걷는 아이들을 보면 또래들 사이에서도 '괜히 센 척한다'는 걸 다 안다. 김다건 군은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이 센 척하면 정말 중2병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싸움이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도윤 군은 "괜히 과격하게 의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대부분 싸움을 말린다"며 "다만 중2병 걸린 친구들은 싸움을 붙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정민(칠곡중 2) 군은 "어떤 친구들은 '눈치글'이라고 해서 SNS에 초성으로 'ㄴㄴㅈㅎ'(너나잘해)같이 센 척하는 말을 써 놓기도 한다"며 "쓸데없이 시비를 걸고 싸움도 못 하는데 괜히 폼만 잡는 친구들은 정말 '중2병'스럽게 느껴졌다"고 했다.

◆"할 것 다 해도 공부도 하니까 걱정 마세요"

기자가 만난 중2 학생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대로 외모에도 관심이 많고 성적 때문에 어른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며 스마트폰을 많이 쓰고 게임을 많이 한다고 어른들에게 지적받기도 한다. 신예주 양은 "3교시 끝난 뒤나 하교 전에 교실 모습을 보면 미장원 같다"며 "남학생들에게 못나 보이기 싫어서 쉬는 시간에 눈썹 다듬고 머리 손질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고 했다. 그렇게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꼭 하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고, 또 하나는 다른 친구들도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또래 집단에 끼지 못해서였다.

중2 학생들은 외모에 신경 쓰고 스마트폰과 게임을 많이 한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의 걱정에 대해 "믿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예진 양은 "어른들이 우리가 공부하다가 잠깐 숨 돌리는 모습을 보고 '공부를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외모에 신경 쓰고 게임 많이 한다고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건설적인 다른 여가생활을 하고 싶어도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을 가야 하는 빡빡한 스케줄과 계속 공부만을 이야기하는 어른들의 잔소리에 결국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SNS와 게임으로 숨통을 틔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자가 만난 중2 학생들 모두 "'스마트폰이나 게임 말고 다른 걸 하자'라고 해도 막상 나가서 할 만한 장소도 거리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중2 학생들의 모습은 '중2병'의 증상이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허세 가득하지도, 감수성이 폭발하지도 않는, 성인들이 겪었을 법한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중2 학생들을 만난 뒤 기자는 오히려 독자에게 한 가지 묻고 싶어졌다. 이처럼 어른들의 이런저런 간섭에도 불구하고 크게 구김살 없이 크는 아이들에게 '병(病)'이라는 낙인을 찍을 이유가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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