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화 칼럼] 청와대 내부의 적<敵>

입력 2015-02-02 05:00:00

견고한 댐도 작은 균열로 붕괴, 청와대 내부 敵은 심각한 문제

시기 놓치면 가래로도 못 막아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판단 미스로 위기를 자초한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때도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통치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아니라 달성군을 지역구로 한 4선 의원 시절이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대구 테크노폴리스가 조성되고, DGIST가 들어서면서 '박사 도시'라는 긍정적 닉네임을 가지며 무한팽창하고 있던 대구 달성군의 6'2 지선에서 혼쭐이 난 적 있다.

5년 전, 한나라당 달성군수 공천권은 뜻밖에도 이석원 후보에게 주어졌다. 당시 이종진 군수(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달성군)는 불출마를 선언, 여러 잡음을 가라앉히는데 일조를 했다. 그래서 이석원 한나라당 후보와 무소속 김문오(현 달성군수, 재선) 후보가 격돌했다. 판세가 이상했다.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소속 군수를 당선시키기 위해 달성군 구석구석까지 누볐지만, 달성군 할매'할배들은 무명의 김문오를 선택했다.

한나라당 대표로 천막당사를 이끌며 차떼기당 오명을 씻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역구에 잘 내려오지도 않고, 여론을 감안하지도 않은 공천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선거의 여왕'이 촌구석에서 수모를 당한 것이었다. 공심위가 공천권을 행사했다고 둘러댈 수 있겠지만, 큰 결함이 없으면 대부분 기초단체장은 지역구 의원의 뜻을 존중하지 않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연초 기자회견에서 '십상시는 없고, 문고리 권력 또한 없다'며 국민을 설득하려다 호된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지지율은 29%로 떨어졌다. 국민 60%가 검찰 발표를 믿지 않는데도 대통령은 내부에서 모시는 이들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 못박았다. 문고리 3인방 가운데 1명은 1'2 부속실을 통합해서 맡는 영전도 했다.

과연 청와대 내부 조직은 전혀 잘못이 없을까. 최근 청와대는 90만원이 넘는 쓰레기통 4개를 포함해서 700개가 넘는 물품을 구입하면서 이름과 가격을 허위로 썼다. 공무원 연금을 개혁하고, 적폐를 해소해야할 청와대가 거짓행동을 하다가 발각된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물품 허위 등록을 한 부서의 해당 비서관은 일벌백계에 처해야 한다.

한비자 유로편(喩老篇)에 나오는 고사성어 '상저옥배'(象箸玉杯)는 하찮은 낭비가 나라를 망치는 사치로 이어질 수 있으니 경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상아젓가락에 옥 술잔을 들면 결국 옥 식탁을 쓰고 싶고, 옥 식탁을 쓰면 천 사람 만 사람의 피로 만든 금준미주를 원하게 되는 것 아닌가.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것을 보고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김기춘 비서실장을 계속 곁에 두는 것은 더 어이가 없다. 아무리 사심이 없더라도 대통령 보좌를 국민 눈높이에 맞도록 하지 못하는 구시대 인물이면 그냥 흘러가도록 두는 게 맞다. 세월호 사태 때, 대통령이 어디 계시든 빨리 팽목항에 내려가야 한다고 조언하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비서실장으로서 자격상실이다.

사태를 수습하려면 위기 진단이 정확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위기는 종북 세력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외부로부터 온 게 아니다. 국민들은 청와대 내부에 대통령의 적(敵)이 있다고 믿고 있다. 대통령을 대통령답게 보좌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가도록 방치하거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면 그건 바로 대통령 내부의 적이다.

여론이 이렇게 인사조치를 원하는데도 모른 척 하고 넘어간다면 자칫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수도 생긴다. 견고한 댐도 작은 구멍을 방치하면 결국 붕괴된다. 비록 내치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안보적인 측면에서는 탄탄한 철학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천심에 부합하는 인사를 통해 여론을 추스르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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