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룡사 연보서 시기적 오류 찾아내…왕재, 구전 근거한 스토리텔링 불과
경산의 한 향토사연구자가 "반룡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것과 요석공주가 설총을 반룡사에서 키웠으며 태종무열왕이 요석과 설총을 보기 위해 반룡사 뒷산을 넘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왕재'는 역사 왜곡 내지는 날조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기정(사진) 경산문화원 향토사학분과위원장은 대구경북향토문화연구소가 펴낸 '향토문화' 제29집 중 '경산 반룡사의 창건시기와 왕재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반룡사 창건과 관련, 경산시 홈페이지 및 문화관광 안내책자에는 '신라 태종무열왕 7년(661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기록돼 있다. 아울러 반룡사에서 펴낸 연보(2013년)에는 '신라 무열왕 7년(661년) 원효대사에 의하여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초 원융국사에 의해 중창된 후 신흥사라고 불렀다. (중략) 자인현감 정충언이 적은 반룡사 중창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헌덕왕 때의 원응국사께서 세운 도량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기정 씨는 이 같은 기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 근거로 반룡사 연보에 ▷원효대사가 반룡사 창건시기(661년) 이전인 653년부터 661년까지 주지를 역임했다고 하나 창건하지도 않은 반룡사 주지를 할 수 없고 ▷같은 책에서 앞부분에서는 원효가 창건했다고 적어놓고 뒤에는 원응국사가 세운 도량이라고 적어 서로 모순되며 ▷원응국사(1052∼1144'학일 스님)는 고려 중기 때 승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경산시, 경산대 경산문화연구소, 중앙승가대 불교사학연구소가 발표한 '구룡산 반룡사 지표조사 보고서'(1998년)에도 "고려시대 이전에 해당하는 유물 및 유구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며, "반룡사는 고려 때 원응국사가 운문사에 주석할 때(1129∼1144) 때 창건했다는 일반적 학설에 동조한다"고 밝혔다.
이 씨는 특히 "반룡사를 창건됐다는 661년은 원효의 장인 태종무열왕이 승하하고 처남인 문무왕이 왕에 오르는 등 신라의 정치상황이 급변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원효가 반룡사를 창건할 여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반룡사 창건 연대를 고려 중기로 본다면 경산문화원이 펴낸 '경산의 전설과 민담' 중에 '신라 무열왕이 요석공주와 설총을 보기 위해 드나들었다'는 길로 알려진 반룡사 뒤편의 왕재는 구전을 근거로 한 스토리텔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경산시 홈페이지와 각종 안내책자, 관광안내판 등에 적혀있는 반룡사의 원료대사 창건과 왕재에 관한 잘못된 내용은 삭제, 수정되야 하고 이를 근거로 한 행사와 사업에 대한 예산지원이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산시 관계자는 "반룡사 창건 시기와 '왕재'에 대한 기록 등 사료가 없는 상태에서 정확한 고증을 할 수 없다. 구전과 전승된 이야기 등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앞으로 관련 학자들의 고증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산 김진만 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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