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퍼 차림 50대 후반 남성 찾아와 5만원권 100장 봉투 놓고 사라져
"아무것도 묻지도 말고, 저를 찾지도 마세요. (봉투) 안에 내용이 있으니 들어가서 보시면 압니다."
27일 밤 8시 40분쯤 점퍼 차림의 50대 후반 남성이 매일신문 편집국 앞을 서성이며 기자를 찾았다. 기자를 만나자마자 그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들어가서 보라"는 말만 남기고 바로 돌아서 발걸음을 옮겼다. 제보로 생각한 기자는 편집국으로 들어와 봉투를 열었다. 깜짝 놀랐다. 노란색 고무줄로 묶인 오만원짜리 한 다발이었다.
돈다발과 함께 종이쪽지가 끼어 있었다. 2009년 다이어리를 찢어 쓴 메모에는 단 두 문장. '돌아오지 못한 돈도 사정이 있겠지요. 그 돈으로 생각하시고 사용해 주세요.'
30자짜리 짧은 메모. 하지만 그 안엔 세상을 담을 만큼 큰 사랑이 있었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 주운 돈을 돌려주지 못한 사람에 대한 이해까지.
기자는 '송현동 현금 살포'에 대한 온정임을 직감했다. 곧바로 쫓아나갔다. 하지만 자그마한 키의 '키다리 아저씨'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신문사 주변을 살폈지만 헛수고였다. 신문사로 다시 들어와 현금을 세워보니 5만원권 100매, 딱 500만원이었다. 당시 5만원권 160장, 800만원이 도심에 뿌려졌다. 이 중 6명이 주운 돈 285만원을 경찰에 전달했으니 남은 돈은 515만원. '500만원'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맞춘 금액 같았다.
대구 도심에 뿌려졌던 돈은 대구의 양심, 온정과 희망이 되어 돌아왔고(본지 1월 6일 자 1면'7일 자 6면'21일 자 1면 보도) 대구시민임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지난달 29일 A(28) 씨가 횡단보도를 지나다 5만원권 160장을 뿌렸고, 이 돈이 고물상 할아버지의 걱정과 사랑이 담긴 돈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주운 돈을 돌려주려는 발길과 이 사연에 감동을 받은 시민들의 온정이 이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우동기 대구시교육감도 이달 초 '대구가 자랑스럽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동참하고 싶다'는 편지와 함께 각 10만원을 송현지구대에 전달, 온정 릴레이에 동참했다. 돈을 줍지는 않았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돕고 싶다고 경찰에 의사를 밝힌 시민이 권 시장과 우 교육감 전에도 5, 6명이나 있었다. A씨 가족들은 돌아온 돈을 받지 않으려 했으나 "시민들의 따뜻한 정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경찰의 설득을 뿌리치지 못했다.
한 달간의 '양심과 온정의 릴레이'는 대구시민은 물론 전국에 아름다운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다.
매일신문은 28일 500만원을 달서경찰서 송현지구대를 통해 A씨 가족에게 전달했다. 길가에 뿌려진 800만원 중에서 이제 남은 돈은 15만원에 불과하다.
이호준 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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