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청 시대 하회마을] ①하회마을, 그리고 하회탈과 탈춤

입력 2015-01-27 05:00:00

탈 막는 하회탈 쓰고 덩실 "경북이 르네상스 꽃피워보세∼"

하회별신굿탈놀이 이매마당에서 바보역 이매탈이 웃자 관객들도 박장대소하면서 함께 소리내어 웃고 있다. 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하회별신굿탈놀이 이매마당에서 바보역 이매탈이 웃자 관객들도 박장대소하면서 함께 소리내어 웃고 있다. 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하회마을 양진당 솟을대문 앞 담장 곁에서 탈놀이 공연을 마친 이매탈과 부네탈이 올가을 하회마을 바로 앞으로 새로 이사 오는
하회마을 양진당 솟을대문 앞 담장 곁에서 탈놀이 공연을 마친 이매탈과 부네탈이 올가을 하회마을 바로 앞으로 새로 이사 오는 '경북이'를 반겨주는 듯 미소를 머금은 채 포즈를 잡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할미미당에서 할미탈이 관객을 불러내 함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할미미당에서 할미탈이 관객을 불러내 함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있다.

신도청 시대를 맞이하는 올해 매일신문은 새 도청과 지근거리에 위치,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될 하회마을을 집중 조명합니다. 하회마을에서 우리 문화의 세계화 가치를 새롭게 발굴하고, 새로 출범하는 웅도 경북의 문화적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27일부터 매주 1회, 모두 15회에 걸친 연재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주-

경북도청과 하회마을은 이웃사촌이 된다. 이제 곧 하회마을 옆으로 경북도청이 이사를 오기 때문이다.

도청 신청사 정문 앞에서 직선거리로 4㎞밖에 떨어지지 않은 하회마을. 이곳은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다녀가면서 일약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한국의 역사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전 세계 국가들로부터 초청받아 해외공연에 나서고 있는 하회탈춤은 이미 세계화가 시작된 지 오래됐다. 각 나라의 한국 외교공관과 문화원마다 하나쯤 걸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하회탈 또한 지구촌 세계 속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경북이'와 하회의 풋풋한 만남

하회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서 참혹한 전쟁 참화를 슬기롭게 극복한 서애 류성룡의 고향이기도 하다. 충효당과 양진당, 북촌댁 등 크고 작은 사대부 기와집과 초가 460동이 한마을에 어우러져 있어서 '가장 한국적인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

국보 제121호인 하회탈과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 등 유'무형 문화재가 고스란히 전승 보전되고 있어 학계는 한국 전통문화의 집적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회마을과 경북도청의 만남을 두고 가히 역사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민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새 역사를 써 내려가는 새 경북의 문화적 기반은 바로 하회마을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내놓고 있다.

"경북이와 하회가 만나게 되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한 것이지요. 이제 우리 하회마을의 세계화는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고 봅니다."

하회마을 터줏대감 류왕근(60) 하회마을보존회 이사장은 곧 마을 앞으로 이사 올 경북도청을 두고 아예 '경북이'라고 의인화해 부르며 친근감을 보인다.

류 이사장의 이 같은 자세에서 텃세가 심해 '웃고 왔다가 울고 간다'는 안동지방 정서의 변화를 체감케 한다. 서애 류성룡의 친형 겸암 선생의 15대손인 그는 도청 이전에 대해 한마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고 말했다. 호국충절의 하회마을 역사를 웅도 경북의 새 가치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회탈과 하회탈춤이 내포하고 있는 소통문화 등 전통 문화적 가치는 앞으로 신도청 소재지에서 전통문화 박물관으로서도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역사마을로 지정된 면적이 약 480만㎡인 하회마을 내에는 지금도 126가구에 240명의 주민들이 초가 기와 고가옥에서 실제로 거주하고 있지요."

이 때문에 류 이사장은 관광객들이 유일하게도 '살아 있는' 전통마을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 간의 우애, 이웃 간의 상부상조 등 우리나라 미풍양속이 하회마을에서만큼은 옛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자랑한다.

"하회마을은 관정을 파지 않고 돌담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600만㎡에 이르는 논도 대부분 천수답이지요. 옛 그대로 지키려는 마음이지요." 풍수지리상 마을 형세는 물에 연꽃이 떠 있거나 배가 떠 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형, 행주(行舟)형이다. 바닥에 구멍을 뚫거나 돌을 쌓게 되면 마을이 가라앉게 된다고 믿어서 그렇단다. '경북이'를 기다리는 류 회장의 하회 자랑은 찻잔이 식는 줄도 모른 채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까지 이어진다.

◆탈 난 세상을 바로잡는 하회탈

"탈은 탈 나게 하는 것을 막는 것이지요. 탈 난 것을 탈 잡아 탈춤을 춤으로써 탈을 방비하는 것입니다."

권두현(51'민속학 박사) 경북미래문화재단 이사는 탈은 '탈 난 세상'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했다. 즉 하회탈은 서민이 탈을 써도 봉건사회의 지배계층인 양반과 선비, 종교인을 대상으로 탈잡이 노릇을 거부감 없이 훌륭하게 해냈다는 것. 그래서 하회탈은 양반탈, 선비탈, 부네탈, 백정탈, 할미탈 할 것 없이 탈 자체만으로도 신령스러운 것이라고 믿고 있어서 마을 구성원들의 부패와 부정을 미연에 가로막아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탈을 쓰면 모든 사람은 평등해집니다. 사회적 지위나 빈부 격차를 없애고 인종과 민족 구분이 없는 존재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도구이지요."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의 산파 역할을 한 권 이사는 탈 분야만큼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탈 권위자다. 전 세계 어느 축제에서도 탈이 등장하지만 우리나라 하회탈이야말로 예술적 가치는 물론이고 표정까지 살아 있어 대사가 필요없는 '세계 최고의 탈'이라고 단언한다.

800여 년 전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하회탈은 같은 탈이라도 다양한 표정을 지어낸다. 양반탈의 경우 정면에서 보면 마음 좋은 웃음기가 느껴지지만, 숙이면 무섭게 화난 모습으로 쏘아보는 듯한 눈매가 만들어진다. 부네탈도 눈매가 약간 사팔뜨기인데, 선비와 춤을 추면서도 눈은 양반을 향하고 있는 부네 캐릭터의 극적 효과까지 나타내 줄 정도로 표정이 다양하게 변한다. 중국 경극은 가면을 바꿈으로써 표정이 바뀌지만, 하회탈은 각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과학적인 탈이라는 것이다.

"국내 어느 관광지에서도 하회탈이 빠짐없이 기념상품으로 진열돼 있습니다. 전 세계 한국 공관에도 안 걸린 곳이 없을 정도지요." 권 이사는 국내 전통문화 유산 중 하회탈만큼 보편화 된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따라서 경북도청이 이전해 올 경우 하회탈은 지금의 모양 그대로 도청의 상징물로 써도 손색이 없다는 것.

하회탈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허도령과 안동 김씨 처녀의 애틋한 전설은 현재 안동MBC에서 '부용지애'라는 뮤지컬로 제작 공연하고 있지만 아직도 하회탈을 대상으로 새롭게 개발해볼 만한 전통문화적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지역 사람들의 얘기다.

"앞으로 800년이 더 중요합니다." 지난 하회탈 역사보다 도청 신청사가 개청된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권 이사는 강조한다. 그는 "하회탈을 통해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견인하는 웅도 경북의 르네상스 시대가 꽃필 것"이라고 했다.

◆봉건주의 속 민주 정신, 하회탈춤

"안동의 정신문화는 옛날부터 양반들이 향유하는 지배계급의 문화와 피지배계급의 민중문화가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전수조교인 손상락(56'부네 역) 씨는 "해학과 익살, 풍자가 관객들을 웃기고 울게하는 하회탈춤은 봉건시대 양반과 상민의 대립, 반목을 잘 녹여 내 갈등을 해소하는 상생의 도구"였다고 했다. 피지배 계층이 탈을 쓰고 지배 계층의 잘못을 지적하고, 지배 계층 또한 피지배 계층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는 민주적 요소가 다분히 내포돼 있어 우리나라가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손 씨가 자랑하는 하회탈춤의 의미는 이렇다. 무동마당과 양반선비마당, 파계승마당, 백정마당 등 하회별신굿이 열리는 날이면 인근지역 주민들까지 구름처럼 몰려들어 마을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비록 제한적인 시간이었지만 하회별신굿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오면서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부르짖음이었고, 별신굿이 열리는 기간만큼은 양반과 상민, 남성과 여성, 젊음과 늙음, 부자와 빈자로 나누어져 있는 엄격한 신분사회의 억압에서 일시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것. 밤새도록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출 수 있는 세상, 상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소리칠 수 있는 세상, 보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자유를 누리며 평등한 세상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열린 세계였다는 것이다.

"샌님들요. 연말정산은 다하셨니껴? 해해해…." 백정탈과 바보 이매탈이 구사하는 익살스런 대사도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저항하는 해학으로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가치가 하나 다를 게 없다. 굿을 열 수 있도록 허락하고 경비까지 내놓는 양반이든, 탈을 쓰고 춤을 춘 연희자이든, 탈춤을 구경하는 구경꾼이든 간에 탈놀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고 스스로 반성하며, 서로 아픔을 보듬어 줌으로써 화합과 협력을 통한 상생(相生)의 정신을 추구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하회탈춤 정신이야말로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켜 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회마을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과 같은 곳이고, 하회탈춤은 대를 이어 오는 우리 삶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곳입니다."

봉건시대부터 지배계층의 탈 난 세상을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하회탈춤의 민주주의적 가치는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부각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 하회탈춤은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인류애를 담고 있다. 그의 얘기는 밤새도록 끝없이 이어진다.

"기득권의 독주에 대한 견제기능 등 하회탈춤의 가치 재분석을 통해 역사적으로 사회통합과 의사소통을 중시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경북인의 정서도 새 경북 시대에 맞춰 새롭게 가다듬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도청권전략기획팀=권동순 기자 pinoky@msnet.co.kr 심용훈 객원기자 goodi6849@naver.com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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