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서기로 출발, 1급 된 비결 "내 일 아닌 마당 쓸기조차 최선 다했다"
경북도청 공무원들에게 '김영재'란 이름은 '대단한 사람'을 뜻하는 대명사다. 16일 퇴임한 김영재 전 경북개발공사 사장은 시골 면사무소 말단 공무원부터 시작, 1급 상당의 자리까지 오른 뒤 공기업 사장을 2차례나 지내고 일흔을 넘긴 나이인 이달, '첫 은퇴'를 했다.
그는 기록의 사나이다. 면서기 시절부터 각종 실적에서 1등을 달리며 선산군청→경북도청→내무부→경북도청→경북도 산하 공기업을 오가면서 각종 기록을 쏟아낸 것이다. 경북개발공사 사장을 퇴임하던 16일 김영재 전 사장을 만나 그간 공직생활의 소회를 들어봤다.
- 면서기에서 시작, 경북도 정무부지사를 거쳐 경북개발공사 사장까지 했다. 비결이 뭔가?
▶고교 졸업 후 농사를 지으라는 선친의 뜻을 받들다 다른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0년 7월 제대 직후 원두막에서 몇 달 공부해 그 해 11월 '지방공무원 5급을' 공채 1기로 공직에 들어섰다. 고향인 선산읍 산동면사무소가 첫 보임지였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면사무소 마당을 반드시 쓸고 내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 마당 쓰는 일은 환갑을 넘긴 급사 몫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젊은 내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면장이 부르더니 "김 서기, 왜 마당을 쓸어?"라고 물었다. 하지만 마당쓸기를 멈추지 않았다.
당시 말단 면서기는 할 일이 많았다. 추곡수매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추곡수매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데 일제강점기 '공출'을 기억하는 농부들은 협조해주지 않았다.
면사무소에서 20리 떨어진 동네까지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며 농가를 찾아다녔다. 가는데 2시간, 오는데 2시간이었다. 녹초가 됐지만, 첫 추곡수매 공판 때 목표량을 넘겼다. 넘긴 정도가 아니라 선산군 내 1등을 했다. 출발부터 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 무작정 발로 뛴다고 고속 승진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공무원은 종합행정에 대한 식견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업무를 배워보려는 욕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면서기가 군청 전입시험 합격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추곡수매를 위해 산 넘고 물 건너야 하고, 새마을운동을 위해 시멘트와 철근을 세고 날라야 하는 고달픈 일과였다. 하지만 선산군청에 가고 싶었기에 노력했고, 군청 입성에 성공했다.
군청 내 최고 요직이라고 하는 행정계'경리계를 거쳐 구미시를 처음으로 만들려고 조직된 '구미 출장소'에 들어갔다. 허허벌판 구미 지도를 새로 긋고, 행정조직의 뼈대를 그때 직접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했더니 그때부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선산군청에서 경북도청 회계과로 바로 들어가 세출 업무를 배운 뒤 세입 업무를 하는 세정과를 거쳐 내무부로 발탁돼갔다. 내무부 요직인 총무과'감사과 등을 거쳐 1991년 다시 경북도청으로 내려와 부지사까지 했다.
- 고속승진을 하면 필연적으로 시기'질투가 따라오는 것 아닌가? 어떻게 극복했나?
▶남들은 너무 빨리, 너무 많은 자리를 했다고 하는데 철인이 아닌 이상 어찌 고되지 않았겠나? 경력을 한 번 보라. 정말 해볼 만한 자리라던 관선 단체장을 한 번도 못해봤다.
"니 아이마 누가 일하노"라며 윗분들은 참모만 시켰다. 정말 힘든 생활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단 한 번 징계도 받지 않았고 투서에 연루된 적도 없다. 내가 힘들면 되지 남을 밟고 일어난 적은 없었다.
- 공무원 생활을 하며 "저분처럼 살겠다"고 생각한 선배가 있었나?
▶이상배 전 국회의원님, 이상희 전 대구시장님,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님을 꼽고 싶다. 공통점은 맺고 끊는 것이 있다는 점, 그리고 업무처리를 강단 있고 매끄럽게 한다는 것이다.
항상 이런 점을 닮고 살려고 애썼다. 자리가 자꾸만 올라가면 후배 직원들이 잘못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다. 이럴 때 이의근 지사님을 생각한다. 그분은 호되게 꾸짖어야 할 때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러면 상대가 알아챈다. 불호령을 내리는 것보다 100배 효과가 있다. 달인의 경지에 이른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도 있었다.
-만 나이로 쳐도 일흔이 넘었다. 밤늦은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온 공직 생활인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했나?
▶개발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정말 장시간 노동을 했다. 건강에 금이 가기 쉽다. 그렇다고 일을 비켜갈 수는 없다. 말단 면서기부터 시작해 고시 출신들 틈을 비집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건강을 지킨 덕분이다.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 빈 시간만 있으면 산을 타고 테니스를 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등산을 한다.
-후배 공직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꿈을 가져야 한다. 미래를 그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임 면서기 시절 추곡수매 공판 실적에서 선산군 1등을 했을 때 "김영재를 본받으라"라는 내용의 공문이 모든 기관에 내려왔다. 1등을 하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녔기에 1등을 할 수 있었다.
꿈을 가지면 반드시 그 결과가 따라온다. 하지만 헛꿈을 꾸면 안 된다. 꿈을 이루려고 노력을 던져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1만 시간 투자 원칙을 갖고 있다. 꿈을 이루려고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공짜는 없다. 그다음은 상대의 눈에서 내 자리를 한 번 더 보라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자기 방향으로만 가기 쉽다. 민원인의 입장으로 건너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행정이 매끄러워진다.
마지막으로 리더가 되고자 하는 공무원은 소통할 수 있는 정(情)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이 없으면 부하 직원들이 신뢰와 믿음을 갖지 않는다.
최경철 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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