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으로도 쓰인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우연히 얻은 횡재 혹은 행운'을 의미한다. 우연히 예기치 않게, 운수 좋게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능력을 가리킬 때 쓰인다.
이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의학 논문에서다. 간의 병소를 절제할 때 병소가 너무 큰 경우 절제하고 남을 부위가 너무 작으면 환자에게 위험하다. 이때 많이 절제할 쪽으로 공급하는 혈관(문맥)을 일정기간 막으면 혈관이 막힌 간 부위는 쭈그러들고 반대편 간은 커진다.
이것을 발견한 사람은 도쿄대 의대 마쿠우치 교수다. 마쿠우치 교수는 담관암 환자를 수술하면서 우측 간이 위축돼 있고 좌측이 커져 있는 환자의 간문맥혈관이 막혀 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한쪽 문맥혈관을 막고 3주간 기다릴 때 막힌 쪽 간이 위축되고 반대편 간이 20~30% 커진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고, 그 기법은 간을 절제할 때 대단히 유용하게 이용돼 왔다. 이것을 두고 서양인 외과의사는 '마쿠우치 교수의 세렌디피티'라고 표현했다.
과학이나 의학에서 대발견은 실수로 얻은 엉뚱한 결과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이다. 플레밍은 포도상 구균 배지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중 배양기에 발생한 푸른 곰팡이 주위에 세균이 자라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푸른 곰팡이의 배양물에서 포도상구균의 증식을 방지하는 물질을 발견해 페니실린을 만들어 냈다.
영상진단에 필수인 X-선도 마찬가지다. 뢴트겐은 음극선이 유리관의 금속 벽에 빠른 속도로 충돌하며 발생한 새로운 종류의 광선이 검은 종이를 뚫고 나와 백금시안화바륨을 감광시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내의 손뼈를 X-선으로 찍어 논문을 발표했다.
X-선은 뢴트겐 이전에 다른 연구자가 만들 수도 있었다. 크룩스라는 과학자는 음극선 주변에서 사진 감광판이 흐려지는 것을 불평하곤 했다. 뢴트겐의 스승이었던 레나르트를 비롯한 독일 물리학자들도 음극선의 성질을 연구하는 데만 집중했지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X-선은 실험을 방해하는 존재로만 여겼다. 그러나 뢴트겐은 부수적인 방해 현상에 주목해 X-선을 발견했다. 실패나 부작용을 불평하기보다는 그 속에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통찰해 대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렌디피티'는 생각의 폭이 좁은 사람, 즉 하나의 목표 외에 다른 것은 배제하고 마음을 하나에만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생활에서도 세렌디피티의 예는 숱하게 많다. 좀 다른 각도로 우리의 삶 속에서 실수나 실패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앞으로 갈 길을 다잡을 때 오히려 더 큰 성취를 얻을 수 있다. 신앙심 깊은 종교인들은 오늘의 실패를 미래에 내려줄 축복으로 내다보며 미리 감사하기도 한다.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들도 과학자들처럼 실패에서 주는 교훈을 되짚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일이다.
강구정 계명대 동산병원 간담췌장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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