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경제혁신의 패러독스

입력 2015-01-19 07:26:15

1956년 경기도 화성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1956년 경기도 화성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새해가 밝았는데도 희망찬 말보다는 위기를 알리는 말들로 음산하다. 암울했던 지난해를 생각하면 분위기 전환이 시급한데 참 이상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가 경제 재도약의 마지막 기회"라고 역설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혁신을 힘주어 강조한다.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리면 이웃 일본처럼 영원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위협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위기 담론이 세상을 뒤덮고 있으니 희망의 햇살이 비칠 리 만무하다.

이 정부도 정권 강화의 방법을 경제 위기에서 찾은 것처럼 보인다. 정치인들이 종종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치지만, 경제가 정말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바보는 없다. 국민소득이 늘어도 개인이 체감하는 가처분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고, 경제는 성장해도 고용은 늘어나지 않고, 중산층은 줄어들고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양극화는 심화된다. 이 모든 것은 경제적 위기의 징후임에 틀림없다.

무릇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앞서야 한다. 한중 기술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창업한 지 10년밖에 되지 않는 중국의 알리바바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의 위기의식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세계 1위 기술이 1개뿐인 우리나라가 성장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선 모든 역량을 경제혁신에 쏟아야 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한국 경제가 기로에 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최근 남발되고 있는 위기 담론의 팽창이 우려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암 덩어리" "규제 단두대"처럼 대통령의 말이 거칠어지면 거칠어질수록 오히려 위기 원인에 대한 진단과 위기극복의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1970년 254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GNI)이 2014년 2만8천달러로 늘어났고, 2014년 IMF가 발표한 한국의 국민총생산액(GDP)은 1조4천억달러로 세계 13위이다. 이것은 실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엄청난 성공이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위기감은 실패에서 야기된 것이 아니라 바로 성공의 과잉에서 온다. 가공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끊임없는 위기의식에 시달리며 초조해하는 것, 이것이 코리안 패러독스의 첫 번째 현상이다. 우리가 선진모델을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선진국을 쫓아가던 시절에는 위기의식 자체가 커다란 동기유발이 되었다. 선진국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선 '빨리빨리' 쫓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분명 성공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다. 우리가 선진국을 정신없이 쫓아갈 때 느꼈던 위기는 사실 초조함이었다. 빨리 따라가지 못하면 더욱 처질 수 있다는 조급증이 지속적인 위기의식을 생산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어느새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하다 보니 더 이상 쫓아갈 선도 주자가 없다는 인식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 있는 기로는 '추종자'와 '선도자'가 갈리는 지점이다. 이제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세계를 이끌어갈 혁신기술을 창출할 수 있는 선도자가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성공했던 방법을 고집하면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과거의 정책을 고집스럽게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경제 문제로만 보는 것도 그렇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처럼 문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국가 주도로 국민의 역량을 한 방향으로만 집중시키겠다는 권위주의 방식도 그렇다.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데 경제혁신 정책은 개발독재 시대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성공해서 실패한다'는 두 번째 코리안 패러독스가 생기지 않도록 경제혁신 정책이 좀 더 창조적이었으면 좋겠다.

이진우/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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