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나는 'X세대'였을까?

입력 2015-01-19 07:27:12

최근 우리 대중 문화계의 가장 뜨거운 화제는 90년대 열풍이다. 분석은 대중문화 평론가들이 이미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90년대의 대중문화의 주역이었던 이른바 'X세대'라는 규정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80년대 학번 선배들은 뭐라고 말만 하면 "'X세대'라서 그런지 생각하는 게 다르네"라고 말을 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분신자살을 하는 이가 있었고, 그때마다 격렬한 시위를 했던 때와 달리 우리가 입학하던 때는 큰 이슈도 없었고, 운동권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념의 압박이 덜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시 대학생들이 애국가 대신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도 "저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다 가지고 싶은데요"와 같은 말을 겁 없이 했었다. 선배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입생 시절과 다른 후배, 선배 말에 순응하지 않는 후배들과 선을 긋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찾아낸 말이 'X세대'라는 말일 것이다.

인간은 어떤 대상에 대해 판단할 때 말이 만들어 놓은 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말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의 하나는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다 선을 긋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좌파'와 '우파'라는 것이 원래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 규정을 통해 자신과 타자(他者)를 구분하고, 의도치 않게 구분되기도 하며, 그에 따라 사고와 행동이 결정되기도 한다. 'X세대'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선배들이 우리를 'X세대'로 규정하는 것에는 자신들은 'X세대'가 아니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후배들이 부러워서 그런 말을 사용했을 리는 없으니까 당연히 후배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말이 된다.

원래 'X세대'란 말은 90년대 초반 기업들에서 새롭게 소비 계층으로 떠오른 집단의 성향을 분석하여 나온 개념이었다. (이후에 나온 'Y, N, M'세대 같은 것도 소비자 분석에서 나온 것인데, 'X세대'만큼 널리 쓰인 것은 없다) 우리나라의 한 광고 회사에서는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던 세대로 경제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던 세대"로 규정을 하기도 했으며, 흔히 워크맨(혹은 마이마이)과 같은 개인주의적 소구에 익숙하며, 서태지로 대변되는 파격적인 문화, 가볍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문화 등 몇 가지 키워드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것이 기업의 마케팅에는 유용할지 몰라도 세상을 보는 데는 크게 유용하지 않다는 것은 'X세대'로 규정된 나의 삶의 행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는 누구네 집 아들이 산수 몇 점 맞았는지까지 훤히 아는 시골 공동체 사회에서 자랐다. 경제적으로 풍요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 익숙해져 지금도 돈 쓰는 단위가 매우 잘다. 당연히 일반 카세트보다 두 배는 비싼 마이마이를 산다는 것은 사치였으며, 노래방에 가서 서태지의 노래를 부를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없다.(이문세나 김건모의 노래를 더 좋아한다) 그리고 '남에게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고, 인생의 목적을 즐거움에 두고 심각함을 기피함'과 같은 말도 'X세대'를 규정하는 말이지만 세상 사람들 중에 이렇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일까?

예전에 장사를 하는 친구가 그랬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 바로 호구와 호구가 아닌 사람!" 호구라는 것을 기준으로 세상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장사꾼이 세상을 보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세상을 볼 이유가 없으며, 그렇게 보는 것은 '좌파, 우파' 같은 말처럼 일종의 선입견으로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X세대'라는 말과 같은 세대에 대한 규정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유용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 말을 통해 세상을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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