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 샥스핀으로 '맛의 사치' 마오쩌둥은 매운 맛으로 혁명?

입력 2015-01-17 07:05:04

혁명의 맛/가쓰미 요이치 지음/임정은 옮김/교양인 펴냄.

'음식'의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와 정치, 특히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책이다. 한족(漢族), 몽골족, 여진족, 후이족(回族) 등 여러 민족의 대립과 융합이 중국 음식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20세기 사회주의 혁명과 문화혁명은 중국 음식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살펴본다.

중국 사람들은 매운맛을 무척 좋아한다. 여기에는 문화혁명기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는 마오쩌둥의 슬로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 매운 것을 먹는다는 것과 혁명이 대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은 '이념이 문화와 풍속을 압도하는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마오쩌둥은 고향 음식인 후난(湖南) 요리를 즐겨 먹었는데 후난성 사오산은 습도가 높은 산간 지역이었기 때문에 음식이 쉽게 부패했다. 부패를 막기 위해 이 지역 사람들은 기름과 고추를 많이 썼다.

지은이는 '마오쩌둥은 발전하지 못한 후난성을 생각하며 고추를 먹었고, 그 매운맛으로 도시를 섬멸하는 환상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실제로 마오쩌둥은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못 해낼 일이 없다. 홍군(紅軍)에 몸담은 이들 중에 고추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면서 인민해방군에 후난 요리의 매운맛을 장려했다.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乾隆帝)는 중국 최고의 미식가로 꼽힌다. 만주족이면서도 한족 요리를 좋아했고, 특히 강남 요리를 즐겨 먹었다. 그는 4대 황제인 강희제(康熙帝) 때 처음 등장한 '만한전석'(滿漢全席)을 완성한 인물이다.

지은이는 '만한전석'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요리'라고 말한다. 식생활 융합을 통해 만주족과 한족의 융합을 꾀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만한전석'은 청나라 시대 지방에 부임한 만주족 관리를 토박이 한족이 접대하려고 고안한 연회 방식으로 만주족 요리와 한족 요리를 똑같은 숫자로 내놓아 베푼 연회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청나라 왕조는 한족 요리에 만주족의 풍미와 만주에 가까운 몽골 요리의 맛을 섞고, 거기에 후이족 요리를 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족 요리를 해체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요리를 만드는 일을 한족에게 맡김으로써 한족 사회에 자연스럽게 파고들도록 한 것이다. 한족 관리로 하여금 한족 농민을 통치하도록 한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그런가 하면 검소했던 청나라 황실의 타락과 부패는 역설적으로 요리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다. 상어 지느러미에 탐닉했던 서태후(西太后)의 '맛의 사치' 덕분에 중국 요리는 전례 없이 화려한 시대를 맞았다.

유목민이었던 여진족(만주족)은 해산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육지의 식재료를 선호했다. 지은이는 "서태후 역시 정말로 상어 지느러미를 좋아했다기보다도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상어 지느러미를 즐겨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한다. 서태후의 상어 지느러미 역시 정치적인 동기에서 나온 음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중국의 음식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였음을 엿볼 수 있다.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왕조가 쇠락할 무렵엔 언제나 환관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은이는 "중국 요리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환관 요리의 역사"라면서 "잃어버린 남성 기능에 대한 콤플렉스와 보상심리가 권력과 부를 향한 욕망과 미식에 대한 탐닉을 부추겼다"고 말한다. 또 궁중요리가 일반인들에게 전파되는 데도 환관들의 욕심이 한몫을 담당했다.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말기에 환관들은 궁중에서 쓸 식자재 구입을 담당하면서 각지에서 산해진미를 들여와 호사를 누렸는데, 이때 식자재 유통을 장악한 사람들은 환관의 친인척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궁중 요리의 비법과 고급 식자재가 시중으로 흘러나갔고 역설적으로 중국 요리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책은 이 밖에도 중국 4대 요리(베이징 요리, 상하이 요리, 광둥 요리, 쓰촨 요리)의 특징과 기원,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 양고기 꼬치구이, 산둥의 자라 요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요리의 탄생과정을 보여준다. 또 사라진 외식문화, 대약진운동과 대기근, 문화혁명과 평등의 맛, 덩샤오핑과 맛의 개방 등 정치와 음식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야기도 들려준다.

지은이 가쓰미 요이치는 일본의 미술 감정가이자 요리 평론가로 1960년대 후반부터 30여 년간 중국 본토를 오가며 중국 식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연구했다. 351쪽, 1만6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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