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24시 현장기록 119] 현장에서 만난 어머니

입력 2015-01-15 08:00:00

겨울 아침 출근길 어쩌지 못해 노출된 목은 아래로 움츠러들고 여미지 못한 옷깃 사이의 냉기는 새삼 선득선득하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북풍을 마주할 때는 벌써 봄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날은 평소보다 더 긴장을 한다.

이런 혹한과 강풍은 화재현장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져온다. 바람은 화재가 났을 때 화염과 연기를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특히 주택이나 사업장에서 다양한 난방기구 사용이 많아지면서 부주의나 순간의 방심에서 화재가 급증하게 되는 시기이다. 제발 조용한 하루가 되길 빌어본다.

출동장비 점검을 막 마무리할 즈음 상황실에서 화재출동 지령이 떨어진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항상 현장으로 달려갈 때 바라는 것은 인명 피해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대형화재가 아니기를 마음속으로 비는 것이다. 출동 중 들리는 무전에 집중하며 간접적인 현장 상황을 예상하고 점쳐 본다. 멀리서 눈에 들어오는 검은 연기는 밀집한 주택들과 도로 사이에서 먹구름처럼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화재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목구멍이 턱턱 막힐 듯한 매캐한 냄새와 적지 않은 숫자의 불구경하는 주민들이 눈에 들어온다. 코앞의 성난 화염은 환하고 뜨겁게 일고 있다. 현장에서 완전무장한 진압대원은 정상적인 소통이 어렵다. 방화복과 공기호흡기에 면체(안면 마스크)까지 쓰고 오감(五感)과 간단한 수신호만으로 아수라장 같은 현장에서 전진과 후퇴를 거듭한다. 생사를 담보로 불과 연기와의 밀고 당기는 싸움은 초전박살(初戰撲殺)을 최우선으로 한다. 다만 소방차 무리의 묵직한 동력 엔진 소리와 현장 통제관의 무전, 목청 터지게 질러대는 동료의 소리만 들린다. 어지러운 듯 얽히고설켜 꿈틀거리는 소방호스는 언제 누구를 걸어 휘감을지 모른다.

도로에서 좁은 골목으로 50m쯤 더 들어간 주택은 이미 검은 연기와 화염에 통째로 삼켜지는 중이다. 늘 그렇듯이 현장 진입은 늘 조심스럽고 두렵다. 집주인이나 거주자는 밖으로 대피하여 주택 내부에는 사람이 없다는 현장 정보를 들었다. 하지만 변수가 많은 화재현장은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확실한 정답도 없다. 직접 부딪치는 철저한 인명검색이 원칙이다.

입구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연기를 향해 관창을 조준하고 거침없는 물줄기로 다스리며 계속 밀어붙인다. 불꽃을 잠재우며 내부의 모퉁이를 돌아서니 용틀임하는 화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놈이 적의 수장이구나."라는 전율을 느꼈다. 상대는 흉물스럽게 집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관창수의 손아귀는 높은 수압과 오랜 물 뿌리기 자세 탓으로 떨려온다. 쥐어짜듯 남은 힘을 모아 집중 물 뿌리기로 끝을 내야 한다. 뜨거운 증기는 면체를 쓴 얼굴의 빈 공간으로 스멀스멀 밀려 들어온다.

저려오는 방화복 어깨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뜨겁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손목의 힘이 순간순간 빠져나간다. 동시에 무언가 청량한 느낌의 기분 좋은 물줄기가 나를 덮는다. 후착대의 강력한 지원에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창문과 출입문들을 개방해 빠지지 못한 유독가스와 부서지고 넘어진 건물 잔해물을 제거하고 남은 불씨를 잡았다. 쉽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현장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으로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같이하는 팀원들이 있고 나와 같은 마음의 대원이 있어 다시 살아난다.

거실 마루에 이중으로 겹쳐 사용 중이던 2개의 전기장판이 깨끗하고 아담한 기와집 한 채를 순식간에 날려 버린 것이다. 둥그런 원형의 보기 흉한 구멍(연소흔)은 그렇게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도대체 이렇게 될 때까지 누가 왜 미련스럽게 놔뒀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겁에 질린 주인아주머니가 눈에 잡혔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혼자 계신 내 어머니가 오버랩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고,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우리 아들이 곧 올 텐데. 우짜면 좋노…."

겨울이면 방바닥이 식는다고 늘 전기장판을 이불 밑에 깔아두는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남김없이 태워 컴컴해진 폐허를 뒤에 두고 우리는 철수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출동 준비를 위한 재정비를 해야 한다. 출동한 소방관에 대한 미안함으로, 타버리고 없어진 집과 세간에 안타깝고 절박한 심정의 어머니를 두고 오는 가슴이 절절하다. "어머니, 항상 조심하세요. 불은 정말 위험합니다. 난방기구나 전열기는 쓰지 않을 때는 전원을 꺼야 하고요. 밖에 나갈 때는 가스레인지는 다시 한 번 돌아보세요."

허탈하고 정신을 놓은 어머니의 등 뒤에서 간절한 투정 어린 잔소리를 퍼부었다.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는 독백은 멀리 있는 어머니에게 전해질 것이다.

불이 나는 현장은 멀리 있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내가 있는 이곳이고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이웃이다.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네 주민이며, 내 어머니이고 형제다. 화재와 다양한 재난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상시 대비가 필요하다. 우리 집의 소화기는 어디에 있는지, 우리 아파트의 비상 대피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리 가족이 응급처치가 필요할 때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둬야 한다. 우리 소방관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네 재산을 지키고 언젠가는 내 아이를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걸지도 모른다.

사용한 소방호스 세척과 출동 재정비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기억이 없다. 내가 오늘 죽다가 살았다는 안도감도 희미하다. 어느새 내 손안의 휴대전화는 어머니를 부르고 있다.

예병옥 대구 중부소방서 삼덕 119안전센터 소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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