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지역 미술계를 달군 최대 이슈는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이하 이우환 미술관) 건립 여부였다. 지역 미술계를 넘어 예술계를 찬반양론의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던 이우환 미술관 건립 사업은 결국 백지화됐다. 해가 바뀌었지만, 설계비 정산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우환 미술관의 시작은 화려했다. 이 화백의 명성에 걸맞게 미술관 건립 사업은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구시가 보여준 행정이 낙제점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여론을 수렴해 미술관 건립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찬반 논란은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고 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잔존하게 됐다.
추진 과정에서도 대구시는 주도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화백에게 끌려가는 인상을 주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마추어 같은 대구시 행정은 민선 6기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권영진 시장은 취임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준비되지 않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당시 권 시장은 이우환 미술관 건립 재검토 입장을 밝힌 뒤 논란이 확산되자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찬반 논란은 불길처럼 달아올랐고 급기야 지역 예술계가 양분되는 사태로 확산됐다. 지역 예술계가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에도 빌미를 제공한 대구시는 중재와 협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구시는 설계에 들어간 이우환 미술관 건립을 포기함으로써 국내뿐 아니라 세계 미술계에 큰 오점을 남겼다. 설계를 맡은 안도 다다오, 이 화백과 이 화백이 접촉을 시도한 작가들이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적 망신살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는 대구시 이미지 추락은 물론이고 앞으로 굵직한 예술사업을 추진하는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를 두고 지역 미술계에서는 대구시가 대단한(?) 선례를 남겼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역 미술계 인사는 "앞으로 이 화백보다 더 뛰어난 경력을 가진 작가가 아니면 대구에서 미술관을 지을 수 없다. 여기에 지역 연고도 있어야 한다. 또 미술관은 완공 후 랜드마크가 되어 확실한 관광 효과를 창출해야 하며 미술관에 소장될 작품은 반드시 기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대구 시민들은 수준 높은 미술관을 보기 위해 타 도시를 방문해야 할 것"이라고 탄식했다.
새해를 맞아 올해 추진할 사업 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점검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지난 일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대로 된 마무리가 없다면 시작만 거창하고 끝은 흐지부지한 일이 반복될 수 있으며 시행 과정에서 겪은 문제를 극복하는 일도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이우환 미술관 건립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대구시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보는 마무리라도 잘 하는 일이다. 제대로 된 마무리는 잘못된 행보를 바로잡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 대구시는 그동안의 행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해야 한다. 대구시가 행정의 전문성을 높이고 추락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과할 일이 있으면 과감하게 고개를 숙여야 하며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으면 책임도 물어야 한다. 대내외 신뢰도가 추락하고 예산도 낭비된 만큼 관련자 징계는 불가피하다는 지역 여론에 대구시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배우는 것은 없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일은 틀어졌지만 제대로 된 마무리를 위해 대구시가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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