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영화 같은 일

입력 2015-01-08 07:12:22

2014년 12월 31일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열린 '제야의 타종' 행사를 보러 갔다. 카운트다운, 타종, 대구시장의 신년사가 차례로 이어지던 중 우연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옆에 있는 한 젊은 남자의 얼굴이 경기 파주시의 한 육군부대에서 군의관으로 일하고 있는 내 친구의 대학시절 얼굴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는 "한 번 말이라도 걸어보지. 혹시 아냐, 12년 전 나일지"라며 답문자를 보냈다.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답을 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사람들이 대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를 할 때 "영화 같다"는 말을 쓰곤 한다. 그런데 드물긴 하지만 때로는 영화 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날 때가 있다.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넘어가는 이때 대구에서는 영화 2편이 동시 상영되는 듯한 일이 생겼다.

지난해 12월 30일 대구 서부정류장 인근에서 한 남성이 5만원권 160장을 허공에 뿌린 사건이 전국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뜨겁게 달궜다. 그때 영화 '타짜-신의 손'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김인권(허광철 역)이 노름판에서 뺏은 돈가방을 들고 떠나는 장면이 있다. 그다음에 나오는 뉴스 장면에는 "한 30대 남성이 서울 한복판에서 자동차 트렁크에 둔 돈가방을 잠그지 않은 채 달리며 돈을 뿌려 시민들이 돈을 줍느라 난리가 났다"는 요지의 리포트가 나간다. 영화 속에서 뿌린 돈이 1천만원 가까운 양이었는데, 이번 사건도 그 양과 비슷했다. 단지 1만원과 5만원의 금전적, 물리적 양적 차이가 있을 뿐.

'타짜-신의 손'이 끝난 뒤 다음 상영되는 영화는 따뜻한 휴먼 드라마였다. 새해가 시작되는 2015년 1월 1일 저녁을 먹고 난 뒤 내 스마트폰에 매일신문 앱 알람이 울렸다. 알람 제목은 '대구 돈벼락은 고물 모은 돈…돌려주는 온정 이어져'였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도중 거실에서 매일신문과 뉴스를 보신 부모님으로부터 "서부정류장에 뿌려진 돈 돌려주는 사람 많다더라"는 말을 듣게 됐다. 뿌려진 돈의 출처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힘겹게 고물을 모아 번 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돌려주는 사람이 많다는 기사가 2015년 첫 평일의 화제가 된 상황이었다. '돈 주운 사람은 횡재했네'라고 생각할 줄만 알았지 주운 돈을 돌려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가슴이 뜨끔하면서 머리가 멍해졌다. '아직도 세상에는 따뜻한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에 횡재 어쩌고를 떠올린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많이 봐 왔다고 자신하는 나지만 뿌려진 돈을 돌려주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들어본 적이 없다. 2015년 청양의 해 처음부터 정말 영화에서도 다루지 않은, 정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15년 내내 이런 영화 같은 일이 많이 벌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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