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공연행사장 '과잉의전' 사라진다

입력 2015-01-08 07:14:17

"스크린 얼굴 도배 낯 뜨거워" 권 시장 관행 변경 주문…지역 문화계 박수갈채

지난해 12월 30일 대구문화예술회관 주최
지난해 12월 30일 대구문화예술회관 주최 '2014 송년음악회'에서 상영됐던 '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대구, 2014년 대구를 돌아보다'는 영상물의 캡처 장면. 2014년 7월 권영진 시장의 취임식으로 시작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권영진 시장의 활동 모습으로만 채워졌다. 하지만 권 시장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이런 장면은 없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에 대한 과잉 의전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문화 시설이 눈에 띄게 확충되고 자리가 늘어나면서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각축전도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혹은 신임을 얻기 위해 소위 높은 분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하위 공무원 혹은 공연 기관장이 '알아서' 모시는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공연장에서는 정작 문화 공연 내용보다는 의전에 더 많은 비중을 둬 관객들의 빈축을 사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송년음악회에서는 공연 초반부, 내빈 소개와 함께 '2014년 대구를 돌아보다'는 주제 영상이 상영됐다. 하지만 이 영상은 지역의 2014년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닌 2014년 후반부, 권영진 대구시장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영상은 지난해 7월 1일 권 시장의 취임식에서부터 시작돼 한 컷 한 컷 권 시장의 모습이 빠지는 장면이 없었다. 이날 공연의 총연출을 맡은 박재환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은 "이번 음악회는 소방관, 환경미화원, 자원봉사자 등 한 해 동안 수고한 이들과 문화소외계층, 일반 시민들을 초대해 이웃과 함께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화합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영상 어느 곳에서도 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코너에서는 하얀 드레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소녀 3명이 시민들에게 바구니를 들고 사탕과 초콜릿 등을 나눠주는 이벤트도 마련됐지만, 이 역시 포커스는 권 시장에게 맞춰져 있었다. 한 소녀가 바구니를 들고 시장에게 다가가는 순간, 공연장 한가운데 설치된 대형 LED패널에 권 시장의 얼굴이 비쳐졌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송년음악회가 시장 한사람에 초점을 맞춘 것은 2012, 2013년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 해 송년 행사에서는 김범일 당시 시장이 주인공이었다. 특히 2012년에는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시장의 배웅을 위해 폭설이 내려 대구시 교통이 마비되는 악천후 속에서도 촛불을 들고 추운 밤 야외에서 도열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2013년 11월 말 있었던 대구시민회관 재개관 행사 역시 시장이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위에 올라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구시민회관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대구시립교향악단과 대구시립합창단이 옮겨와 처음 갖는 무대에서 당시 김범일 시장은 공연 전 무대에 올라가 건물의 설계와 감리를 맡은 업체에 감사패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 신임도 아닌 4년째 대구시향을 이끌고 있던 곽승 지휘자에게 지휘봉 전달식을 가져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권위적인 행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런 모습은 보지 않게 될 전망이다. 권영진 시장은 송년음악회 다음 날인 12월 31일 시청 고위간부들과 가진 티타임 자리에서 "모든 영상이 내 얼굴로만 채워져 낮이 뜨거워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며 "차라리 대구의 명소를 알리는 시정 홍보 영상이라도 틀 것이지"라며 난감한 심정을 토로했다. 또 권 시장은 "나는 문화행사에서 시장 소개하고 축사를 하도록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태까지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런 권 시장의 말이 알려지면서 문화계에서는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며 환호하는 분위기다. 시장이 축사나 내빈 소개를 사양한다면 자연히 다른 기초지자체와 지방의회 의원들이 무대에 오르는 일도 상당 부분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문화계 인사는 "사실 진작 바로잡아져야 할 병폐였다"며 "뒤늦은 감이 있지만 권 시장의 바른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한윤조 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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