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원전정책, '돈질'밖에 없나?

입력 2015-01-07 07:36:53

경북 울진을 처음 찾은 사람들이라면 깜짝 놀라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고급 외제 승용차다. 수도권이나 대도시를 웃도는 외제차 수에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게 된다. "이런 시골에…"라며 울진군민들의 소득 수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동네마다 빈땅마다 들어서 있는 헬스장도 경이로움 중 하나다.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도 무료다. 공짜라서 그런지, 텅텅 빌 때가 많지만 인상적인 풍경임에 틀림없다. 포항의 대형백화점 우수고객 중에 울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포항 고객들은 이것저것 따지며 신용카드로 계산하지만, 울진 고객들은 깎지도 않고 시원스레 현금을 낸다고 한다.

울진은 교통 오지에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인데도, 돈이 넘쳐난다. 전적으로 원자력발전소 덕분이다. 원전과 이래저래 얽혀 있는 업자와 상인, 유력인사의 소득 수준은 서울사람이 전혀 부럽지 않다. 울진에는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이 8기나 있으니 법정 지원금과 대안사업비, 건설공사비 등을 합하면 1년에 수천억원이 뿌려진다. '원전 공사장 주변에 가면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원전은 축복'이라 느끼고 있을 사람이 한둘 아니다. 매년 500억원 이상의 법정 지원금을 받고 있는 울진군은 얼마 전 2년간 2천800억원의 대안사업비를 더 받기로 했다. 공사 중인 신한울원전 1, 2호기의 정상 가동을 위한 밑밥 성격의 돈이다. 대규모 시위가 있거나 원전 건설에 고비가 있을 때마다 정부와 한수원이 돈 잔치를 벌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미있게도 원전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원전 반대를 외치는 시위꾼이라면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던 시위꾼이 어느 날 갑자기 조용해졌다면 무엇 때문일까? 십중팔구 그의 가족이 한수원에 취업했거나 공사 하청을 받았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가 사석에서 들려준 얘기는 정말 적나라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주민들이 시끄럽게 하는 것을 막는 데 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주민 불만을 잠재우는데 돈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얘기다.

신규 원전이 계획된 영덕 지역을 보자. 얼마 전 정홍원 국무총리까지 내려와 주민들에게 각종 주민사업을 약속하고 1조5천억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큰 선심을 쓰는 것 같지만, 법에 규정된 원전 지원금을 60년간 나눠주는 것뿐이다. 말의 성찬에 불과하지만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영덕군의 1년 예산이 3천여억원에 지나지 않는데 조 단위를 들먹이니 누구나 현혹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이 '돈벼락'을 기대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정부와 한수원이 원전정책을 실행한 바탕에는 비상식적인 '돈질'에 달렸음을 알 수 있다. 그 돈을 보고 얼마나 많은 업자와 토호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 것이며, 얼마나 왜곡된 형태로 쓰일지도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사회에 아무리 돈이 전부라고는 하지만, 정부와 한수원이 앞장서 돈 얘기만 하는 모습은 정말 볼썽사납다. 주민들에게 원전의 안전성과 국가 에너지정책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정중하게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 시골사람들에게 어려운 얘기를 시시콜콜하게 해봐야 통할 리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돈질에 앞서 이런 노력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올해 경북 동해안 지역에는 첨예한 원전 이슈가 몰려 있다. 영덕 신원전 건설, 월성원전 1호기 영구정지, 고준위방폐장 입지 등을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원전의 안전성, 효율성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돈 문제가 우선시되는 상황이 올 것 같아 걱정스럽다. 먹고사는 문제를 무시할 수 없지만, 안전문제만은 제대로 짚고 가야 한다. 돈과 원전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선택을 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고민스러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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