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문재인 '국제시장'은 다를까?…스크린 속 정치학

입력 2015-01-03 06:00:00

영화에 깃든 정치적 함의를 입맛대로 해석해 여론을 형성하려는 '영화 정치'가 유행이다. 영화 관람평을 통해 자기 메시지를 내놓는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 떠오르는 영화, 어느 쪽에 불리한 영화, 대놓고 누구를 위해 만든 영화 등이 줄기차게 제작된다. 이제 정치와 영화는 의도했든 아니든 밀월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국제시장', 감독은 정치색을 뺐다는데…

영화 '국제시장'(윤제균 감독)이 중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격변의 현대사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역경을 담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선거에 나선 문재인 국회의원이 한날한시에 관람하면서 "국제시장이 정치 영화냐"는 해석이 말들을 낳고 있다. 두 사람은 영화의 배경인 부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던 김 대표는 "기성세대, 은퇴한 분 모두 험난한 인생을 살면서 가정과 나라를 지켰기에 오늘이 있다는 것을 젊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 의원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영화가 제 개인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 영화가 보수적인 영화라든지 그런 해석은 당치 않은 것 같다.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 같은 장면이 있지만 그건 시대상이었다." 문 의원의 감상평이다.

영화 국제시장에는 김 대표 아들 고윤(본명 김종민) 씨가 흥남부두의 피란민들을 배에 태워 달라고 미군에게 호소하는 배역을 맡기도 했다.

윤제균 감독은 정치색을 뺐다고 한다. "부모님 생각을 하면서 만든 영화"란다. 하지만 '산업화를 미화했다' '민주화 과정을 뺐다' '애국에 호소하는 보수주의 색채가 강하다' 등등의 해석이 요란하다.

◆정치→영화? 영화→정치?

정치적 메시지가 부각돼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영화로 2007년 개봉했던 '화려한 휴가'를 꼽을 수 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만든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 열린우리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일각에선 "영화로 2030 표심을 움직여보자"는 말이 나왔다. 김두관 이해찬 한명숙 정동영 손학규 등 당시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영화관을 찾았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18대 대선 과정에선 정치색 짙은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소재로 한 '남영동 1985',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해자 가족의 전두환 대통령 암살 시도를 그린 '26년', 특히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문재인 안철수 당시 두 대선 후보가 관람하면서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문 후보는 '영화를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났다'며 5분간 눈물을 쏟았고, 안 후보는 "지도자의 진정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대선과 맞물리면서 '광해'는 누적 관객 1천231만 명을 돌파했다.

2013년 12월 '변호인'이 개봉했다. 대선 1주년에 맞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소재로 삼았다. 1981년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당시 고문 피해자의 변호인으로 노 전 대통령이 나서는 과정을 그리면서 개봉 전부터 큰 화제가 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단체관람했고 새누리당과 현 정부에 영화 관람을 적극 권유하기도 했다.

지난해 나온 '명량'은 최초로 1천761만 관객이 찾았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정치권 화두가 됐다. 세월호 사건이 국회에서 수렁에 빠지자 "이순신 장군을 배우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명량을 직접 관람했다.

◆정치, 영화에 올라타다

대중과 호흡을 함께 하는 영화는 정치와 불가분 관계다.

정치색이 드리워졌는가를 떠나 영화 '카트'는 여야 없이 정치권이 홍보전에 나선 바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과 투쟁이 소재로, 이를 보듬을 정당은 자기 당이라 선전(?)하는 모습이었다.

민감한 정치 상황을 에둘러 표현하는 데 영화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는 정치인에게 좋은 도구다. 비난받거나 꼬투리 잡힐 일도 영화를 통하면 피해갈 수 있다"고 했다.

정치 불신이 더할수록 '영화 정치'가 번성하리란 것은 최근의 여러 영화와 그 관객 수로 알 수 있다. 현 정치에 던질 질타를 영화를 통해 대신하고, 본받아야 할 리더십에 환호하며 현 정치인을 나무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영화와 현실의 공통점을 끄집어내 지지층을 그러모을 수 있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의 리더십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정치권의 아전인수는 말리고 싶다. 관객 수준이 그리 낮지 않다.

이지현 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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