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적고 권한 없어 자살위험자 입원 조치 등 장기간 관리 못해
대구의 공공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운영하는 자살예방프로그램이 자살 위험자에게 상담 외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자살 위험자는 전문적인 정신상담과 진료비 지원을 바라고 있지만 대구시와 정신건강증진센터는 부족한 예산을 이유로 제한적인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필요할 때는 도움 받을 길 없어
유모(31) 씨는 감정 기복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 환청'환각을 겪는 데다 자신도 모르게 자해를 일삼기 일쑤다. 약물'상담 치료가 필요하지만 가족이 그를 외면하면서 병원비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유 씨의 거주지에 있는 정신건강증진센터는 그가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한 사실을 알고 지난 10월 그를 '자살 고위험군'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유 씨는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정신과 전문의가 주 1회만 출근해 내가 필요할 때 상담을 받을 수 없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자해 충동을 느낄 때마다 참아보라는 말만 반복한다"며 "내게 맞는 정신건강 전문상담이 필요하다고 부탁했더니, 센터는 역할을 다 했다고만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해당 정신건강증진센터 관계자는 "예산이 적어 전문인력을 더 고용할 수 없고 병원 비용을 지원할 근거 규정도 없다"고 밝혔다.
◆사업비 대부분은 인건비로 지출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증진센터 내 기초자살예방센터에 대한 사업비 기준을 정하고 이 비용 절반을 지원한다. 대구의 8개 구'군의 기초자살예방센터 운영 예산은 각각 1억6천만원(북구'서구는 각 1억9천만원)이다.
문제는 인건비가 사업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사업 지침에 따르면 각 자살예방센터는 최소 6명의 정신건강 전문인력(정신과 전문의'정신보건전문요원'사회복지사'간호사 등)을 둬야 하고 이들에게 1인당 연간 1천308만~2천256만원(1호봉 기준)의 인건비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적어도 1억1천600만원의 인건비를 지급하고 나면 남는 예산은 4천3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센터당 평균 195명에 이르는 자살 고위험자를 상대로 심리교육과 야외활동, 직업재활훈련 등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그렇다고 인력을 줄일 수도 없다. 센터 직원 한 명당 자살 고위험자를 30~60명씩 맡고 있어서다. 센터 한 직원은 "모든 등록자의 증세와 상태, 자살 위험성을 혼자서 모두 파악하고 감독할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살예방센터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려면 센터에 대한 지원과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철 계명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고위험자에게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만 병원비 부담은 물론,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병원의 장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자살 위험자가 부담 없이 찾는 자살예방센터의 권한을 키워 이런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며 "자살예방사업은 등록자가 자살할 마음을 갖지 않을 때까지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상담 한 번으로 끝나는 서비스가 아니다. 정부는 자살예방센터 직원의 근무 연속성과 상담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인력을 늘리고, 자살 고위험자에게 초기 병원 상담 및 진료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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