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강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님은 그예 강을 건너시네(公竟渡河), 기어이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墮河而死), 장차 내 님을 어이할꼬(當奈公何)'.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로 꼽히는 고조선 시대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마치 2천여 년 만에 되살아난 듯하다. 진모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그렇다.
영화는 76년 동안 해로(偕老)하다가 98세로 타계한 할아버지와 아홉 살 아래인 할머니의 사랑과 이별을 그렸다. 노부부의 빛깔 고운 한복처럼 아름다운 강원도 산자락 마을에서 실재했던 소박한 삶 속에서 피어난 시골 내외의 애틋한 동행 이야기이다. 계절이 오가고 꽃이 피고 지듯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만남과 별리가 다정다감하면서도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도 이 영화가 우리네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우선 그 특별한 제목 때문이 아닐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이른바 '승화된 이별의 정한'을 담은 한국 서정시의 원조격인 '공무도하가'와 시공간을 초월한 맥락을 잇고 있는 게 아닐지. 그 각별한 정서가 아리랑으로 농축된 우리 민족 고유의 원형질을 일깨우면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무도하가'는 짝을 지어 노니는 꾀꼬리에 감정을 이입해 님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로 이어지며,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로 시작하는 고려가요 '가시리'에서 큰 울림을 머금었다. 그 정한이 조선시대 황진이의 시조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임의 정이…'로 흐르다가, 현대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아무튼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올겨울 극장가를 울리며 얼어붙은 가슴에 웅숭깊은 화롯불을 지피고 있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남진은 '님과 함께'라는 가요에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라고 열창했다. 누구나 긴 세월 변함없는 사랑과 아름다운 이별을 꿈꾸지만, 그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세모에 흘리는 이 따뜻한 눈물이 유난히도 얼룩진 한 해를 보내고 더 나은 새해를 맞이하는 한편의 서정시가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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